본문 바로가기

늙은 호텔리어의 맛집

판박이 아이의 소박한 소원, 서대문 통술집 [서대문 맛집]

왜였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머니는 제게 만원을 쥐어 주십니다.

갈비를 사먹고 오라시네요?!


당시 읍내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숯불구이 고깃집으로 가서는 소갈비 1인분을 시켰더랬지요.

인심이 야박하진 않았던지 1인 분을 군말없이 내어 주셨고,

저는 빨간 참숯에, 정말 맛있게 갈비를 혼자 구워 먹고 나왔습니다.


도회 고등학교로 진학하기 전 중학 시절인 듯 하니 벌써 30년 넘게 묶은 기억이군요.

얼마나 맛있게 먹었던지, 지금도 그 맛과 한옥 고깃집의 대청마루 등이 기억에 생생한데,

 지금도 그렇긴 합니다만 어릴 적 꽤 고기를 좋아했었나 봅니다. 


고기를 좋아하는 제가, 아마도 소원이라며 어머니를 졸랐을까요?





막내 놈이 유독 고기를 좋아라 합니다.

성격도, 식성도, 그리고 외모도 붕어빵...

그러니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을 밖에요.


어쨋거나 몇일 전부터 고기타령을 하네요?!

급기야는 아예 소원을 걸었다더군요.

흠...... 남자 놈이 고기 따위에 천금 같은 소원을 내걸다니.....


서대문 원조 통술집


 누나랑 같이 가자며 주말로 미뤄뒀는데 마침내 그날이 왔습니다.

인터넷을 찾았더니 이곳이 당장 나오네요?!

처음 오는 곳입니다만 출퇴근 길에 얼핏 봤던 듯도 합니다.

집 앞에도 갈비집이 두어 곳 있긴 합니다만 변변치 않고요...


서대문 원조 통술집


인심 좋아 보이는 할머니께 사장님되시냐고 여쭸더니 아드님이 그렇다시네요?!

편안해 보이십니다. 하지만 정작 그 젊은 사장님은 보이지 않더군요.

토요일이라 옆 확장한 곳에만 손님을 받았습니다.


서대문 원조 통술집 메뉴


단촐한 메뉴, 주특기는 돼지갈비인 듯 합니다. 

250g 일인분, 가격이 저렴한 편이지요?



상추, 파무침과 무채가 깔리고요 

물김치는 그다지 땡기지 않습니다. 익지도 않았고요..

개인적으론 없애도 될 듯한 곁음식입니다.



성형탄을 씁니다. 

이런 식의 통술집에서 숯을 기대한다면 과한 욕심을 부리는 것이지요?!



돼지갈비 4인분

얼리지 않은 생고기를 내는데 떼깔이 훌륭하군요.



불판이 좀 지저분해 보입니다?!

기름 때가 틈사이에 뭍어 있는데, 일하는 분들이 힘 부치는 할머니들이어서일까요?

하지만 자주 갈아 줍니다.

이곳의 단골들은 아마도 이 정도는 감수하고 오겠지요?!



고기는 괜찮지만 갈비 외의 부위도 섞여 있는 듯 합니다.

하지만 왠만한 고깃집처럼 접착제로 이어 붙이며 사기질 하지는 않았고요,

양념도 카레멜을 섞지는 않아서 끈적이지 않습니다.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은 맛, 달지 않아서 좋군요.

양념을 많이 쓰지 않았습니다. 자극적이지 않으니 고기의 맛을 간섭받지 않고 느낄 수 있습니다. 

고기도 전체적으로 괜찮은 편입니다.



파무침에도 양념을 거의 하지 않다시피 했군요.

제겐 약간 심심합니다. 오히려 무채를 곁들여 먹으니 좋네요.



양념장으로 나오는건 쌈장이 아닙니다.

고추장에 찹쌀을 넣어 따로 볶았다네요?

쌈장을 달라면 줍니다만 이 고추장 양념 또한 자극적이지 않아 좋습니다.



고기를 좀 추가하고요....



된장찌개 좋네요.

큰 냄비에 오래 끊이다 주문하면 조금씩 덜어 두부 등을 넣고 내오는 듯 합니다.



소원 풀었냐?ㅋ

많이 먹고 건강해! 그리고 앞으론 조금 더 큰 소원을 생각해 봐라~





서대문원조통술집, 그야말로 통술집입니다. 여러가지 부족하고 허술한 면이 많아 보이지요? 치루는 가격에 더 하지도, 덜 하지도 않은 서비스를 받는 정직한 곳, 

번듯하지 않은 내부, 시끄럽고 연기 자욱하지만, 가격도, 내는 구색도 편안한 서민의 술집입니다. 


통술집이란 술값을, 안주 포함해 통째로 받는 술집, 엄밀히 말하면 술값만 받고 알찬 안주는 무료로 내는 곳을 뜻한다고 하는데, 해산물이 풍부했던 경남 남부의 해안지역에서 유행했다네요?! 저렴하게 한잔 술 할 수 있는 실비집과 마찬가지로 서민의 술집입니다 (도움 받은 글 링크).


서대문원조통술집도 1961년 생겨났다니 아마도 고기집인 지금과는 달리 초창기에는 막걸리나 소주를 시키면 안주 한 상 같이 나오는 그런 통술집이었겠지요?! 짐작키로, 이 원조 통술집 주변은 1961년 통술을 팔던 그때나 지금이나 거의 변하지 않은 듯도 한데, 마침내 그 앞으로 휘황찬 호텔이 들어서는군요. 


올해 5월 경 개관예정인 신라스테이 미근동(서대문) 인데, 이 호텔이 문을 열고 성업하면, 50년 넘게 나이 먹은 그 서민들의 선술집 역사 하나가 또 사라지게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그렇겠지요? 


서민들이 술김에, 허투루라도 희망을 입에 올릴 수 있는 공간마저 사라져가는 요즈음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