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블로그 찾아 오시는 분들이 있더군요. 아마 호텔을 배우는 학생 분들인 듯 보이는데,
그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글을 위로 끌어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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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 옛날엔 겁 없이 잘도 주절거리더니, 요즘은 꽤 조심스럽군요. 부족하기로 따지자면 그 누구 못지 않은 처지로, 단지 먼저 들어오고 먼저 경험했다는 이유가 내게 자격을 허락하는 것일까.....
그저, 비슷한 길을 먼저 걸어간 선배 호텔리어들 중 한 사람의 경험담을 엿듣는 정도로 생각하셨으면 좋겠군요. 가볍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후배 한 명을 대동했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호텔에 인턴으로 있었던 젊은 호텔리어이고요, 얼마 전 새로 생긴 호텔에 취업을 했으니 축하도 할 겸, 저녁이나 간단히 먹을 자리였지요.
빈 포지션이 있었다면 아마도 먼저 채용되었을 재원이지만 규모도 크고, 오래되어 안정적인 호텔에는 좀처럼 기회가 생기질 않더군요.
명석한 아이이니 중요한 것들 대부분은 6개월 인턴 때 이미 체득할 수 있었을 겁니다. 나이가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삶을 보는 시각이 진중하면 심지어 허드렛 심부름하는 과정에서도 무언가를 깨치는 듯 하더군요. 경력의 문제도 아닙니다.
앞으로의 호텔 생활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도움말들을 기대했을 테지만 저의 늙은 생각들은 크게 소용될 게 아닌 듯 했어요. 제가 그맘때 겪고 느꼈던 건 벌써 20년이나 해묵은 낡은 것이고, 그나마도 대부분 기억에서 지워졌습니다.
더군다나, 원대한 포부로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젊은 신입과, 남은 직장 생활이 큰 변화없이, 그저 안정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기만을 바라는 늙은 호텔리어의 눈높이가 같을 리 만무하지요. 세월은 흘렀고 주인공은 바뀌었으며, 그들과 저의 생각은 오히려 달라야 정상입니다.
호텔이라는, 동일한 일상이 무한 반복되는 따분한 시스템 속에서 선배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건 그다지 많지 않아요. 기껏해야 이것 저것 적응하고 익숙해지는데 필요한 스킬과 잔재주 뿐.... 밥 먹으며 후배에게 가볍게 던졌던 제 몇 마디는 아마도 참고할 정도면 족할 수준이었을 겁니다. 선배의 넋두리나 푸념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어요.
일루스트레이터 전신영 (illustrate by 전신영)
후배들을격려해야 하는 처지로 이런 말 입에 담기 조심스럽지만 저마다의 능력, 인성이며 재능, 곧 잠재력을 구성하는 여러 자질들은 입사하기 전에 이미 만들어져 있는 듯 보이더군요.
호텔은,
교육이나 여러가지 의도된 조직 활동을 통해 젊은 호텔리어를 조직의 틀에 맞게 가다듬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혹여 성장을 위해 더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대부분의 것들은 스스로 알아서, 필요하다면 호텔 밖에서 추구해야 하죠.
어디나 마찬가지이지만, 이런 조직 행위들은 어쩌면 개성을 죽이기도 합니다. 신입 호텔리어의 튀는 꿈과 열정은 잘 용납되지도 않아요. 설령 이런 조직화 과정이 아니더라도, 호텔은 스케일이 작아 대부분의 옹골찬 꿈들은 자연스럽게 위축되기도 하더군요.
꿈과 현실 사이의 불협화음은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할 성장통이지만, 꿈을 알차게 담금질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처음 품은 그 큰 꿈을 '어떻게 하면 잘 지켜나갈 수 있을까' 고민하고 신경 쓰는 일이 오히려 더 중요할 수도 있어요.
업무와 조직에, 그리고 스스로에게 익숙해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호텔의 대부분 업무들은 아주 단순해서,쉽사리 익숙해지며, 편해지고, 급기야 그 알량한 기득권에 안주하며 변화를 거부하게되죠. 종국엔 조직으로부터 외면 당하며 비굴한 마지막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매너리즘에 빠진 채, 가진 경쟁력의 전부가 '스킬' 뿐인 선배들을 닮아서는 안됩니다. 완고하게 짜여진 기존의 질서들을 의심할 줄 알아야 하며, 새로운 무언가를 항상 고민하고 추구해야 해요. 그것이 단조로운 공룡 조직에서 꿈을 끝끝내 유지하고, 성장을 예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일루스트레이터 전신영 (illustrate by 전신영)
잘 성장한 호텔리어 한 명이 호텔 전체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다더군요. 그런 경우를 들은 적도 더러 있습니다. 그렇지만 먼훗날의 얘기이고, 당분간은 매너리즘에 물들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남을 수 있어야 하겠지요?!
길게 주절거렸지만 간단한 내용입니다.
익숙해지지 않고 항상 변화를 고민하는 것,
원대하게 품었던 그 꿈이 크게 상처 나지 않도록 잘 품는 것.
그렇지만 아무나 엄두 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기본적인 자격도 갖추지 못한 신입이 어줍잖은 호기를 부리면 볼썽 사나운 존재로 전락하기 쉽상입니다. 감히 꿈을 말하고, 오랜동안 행해진 호텔의 관행에 문제를 제기하려면 먼저 스스로에게 떳떳해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