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호텔이야기

역사의 뒤안길로... 벨레상스 서울 호텔 (구. 르네상스 서울 호텔) 폐업


못본채 그냥 넘기기엔 결코 가볍지 않은 이슈,

보고 들은 바를 간단히 코멘트하고 넘어 가도록 합니다.


이걸 보는 순간 

기분이 더욱 착잡해졌습니다.



개관 28주년 기념 메뉴

벨레상스 호텔의 양식당 맨해튼그릴의 프로모션


곧 역사의 뒤안길을 걸어야 할 호텔, 그리고 개관 28주년을 기념한다는 프로모션.... 


벨레상스 현관에 나붙은 영업종료 (폐업) 공고


현관에 내걸린 초라한 행색의 영업종료 공지는 늙은 몽돌까지 왜소하게 만드는군요. 내일이면 벨레상스 서울 호텔 대부분의 영업장은 문을 닫습니다. 영원히.... 





직원들에게 여쭈니 객실은 10월 6일까지 부분 영업할 예정이라 하더군요. 오가는 고객들은 평소와 다름없는 듯 했고요, 겉으로 느껴지는 분위기 역시 아무일 없던 평소 호텔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곧 없어지고 말 벨레상스의 운명은 직원들 표정에서나 간신히 읽을 수 있었죠.





호텔아비아의 장진수 대표께서 주선한 모임이 이곳에서 있었습니다. 마지막을 기억하기 위해 벨레상스로 장소를 정했다 하셨는데, 저도 흥쾌히 동의했더랬죠



좀 빨리 도착해 이곳 저곳을 둘러 봤고, 직원들께 '앞으로의 일'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고용이나 해직 처우에 대해 자세히 들은 바 없는 듯 했고, '호텔 직원 100명이 새로운 프로젝트에 의해 승계될 것' 정도만 들어 알고 계시더군요.


벨레상스 로비/개방적이고 넓습니다


연회장에선 백 수십 명 피트니스 회원들의 집회가 소란스럽게 열리고 있었는데, 듣고 보니 이곳에 근무하는 호텔리어들만 매각 영향에 노출된 게 아니었더군요. 벨레상스에 입점한 임대 영업장과 피트니스센터 회원들도 곤궁한 상황에 처한 듯 했습니다. 보증금을 돌려 받지 못할 처지에 내몰렸다네요?


벨레상스 피트니스센터 보증금 지급을 요청하는 플래카드


기 천 억이 오가고, 딸린 식구를 포함해 수 천 명의 밥줄이 걸린 사안이니 난마처럼 얽힌 이해 관계를 풀어 내긴 쉽지 않겠지요? 아마도 직원들의 해직 처우를 비롯해 보증금 이슈 등이 해소되려면 꽤 시간이 걸릴 듯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모양새는 도무지 이해하기 쉽지 않아요. 너무 허술하고, 체계도 없으며, 부도덕해 보입니다. 잘못도 없는 호텔리어들이 길거리로 내몰린 마당에, 기업회생절차 (법정관리)에 접어들게 한 원인 제공자, 소유주는 최소한의 도의적 책임도 회피한 채 배 째고 뒤로 나앉은 게 아닐까 생각될 정도이고요, 겉으로 보기엔 채권단 역시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더군요. 


계약 양자 사이에 어떤 언질이 오갔는지 알 리 없지만, 오히려 매입사 VSL 코리아 (시행사 SLI)에서 체불 임금과 호텔리어에 대한 퇴직 위로금 지급 건 등을 놓고 노동조합과 협상 중입니다. 




벨레상스가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에 대해선 아래 경과 참고하시고요..



강남 역삼동 소재 벨레상스서울호텔은 삼부토건(계열회사 남우관광)이 소유한 특 1급 호텔로, 1988년 라마다 호텔 체인과 경영위탁계약을 체결, 라마다 르네상스 호텔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합니다. 1993년 메리어트 체인 산하 르네상스호텔앤리조트와 경영위탁계약을 새롭게 체결했었어요. 하지만 매각으로 소란스러워진 최근에 메리어트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벨레상스서울호텔이란 스스로가 만든 간판을 달았습니다. 


당황스럽게도, 호텔이 이 지경에 처한 건 호텔 자체의 문제 때문이 아니란 겁니다. 모기업 삼부토건은 건설업 불황에 따른 경영 부실과 오너 횡령 등의 이유로 2011년 유동성위기를 겪게 됩니다. 이때 채권단으로부터 7천5백억의 자금지원을 받으며 급한 불을 꺼죠. 하지만 유동성 지원 댓가로 알짜배기 계열사 벨레상스 (구 르네상스서울 호텔)의 매각을 채권단에게 담보합니다.

 

삼부토건은 지난해 결국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채권단은 벨레상스호텔 (구 르네상스호텔)과 삼부빌딩을 엮어 수차례 매각을 시도합니다. 하지만 높은 호가 (최초 호가 1조 1천억)와 호의롭지 않은 자금시장, 그리고 물건의 잠재 가치 등에 대한 이슈로 번번히 무산되다가 올해 4월 6900억에 VSL코리아로 낙찰되었습니다.



벨레상스 호텔과 삼부빌딩(좌)


언론에 따르면, 벨레상스 호텔과 삼부빌딩을 허물고, 그 자리에 38층 짜리 럭셔리 쌍둥이 복합을 다시 올릴 예정이라 했더군요. 당연히 호텔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고, 만다린 오리엔탈과 로즈우드와 같은 휘황찬란한 브랜드 명까지 거명되고 있습니다. 대규모 리테일도 입에 오르내리더군요. 


그림이야 원래 그리는 사람 맘, 그렸다 지웠다 하는 것입니다. 그곳이 앞으로 어떤 모습일지 장담하기엔 변수가 많습니다. 여하튼 제겐, 부끄러운 그 과거를 가리기 위해 온 종적을 땅속에 파묻고, 각인과도 같은 자격지심에 그 위를 더욱 화려한 화장빨로 치장하려는 부정한 의도로 언뜻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VSL코리아 (시행사 SLI)의 원대한 포부와는 달리 사업성에 대해선 말들이 없지 않았습니다. 듣자니 그동안 거명되었던 유력 응찰자들이 중도에 나가 떨어진 이유 역시 비싼 매입비와 불투명한 사업성 때문이라지요? 매입비 (그 사이 반토막이 나긴 했습니다만)와 재건축에 소요될 비용을 모두 합하면 총사업비가 물경 1조 4천 억에 이르는 대형 프로젝트입니다. 테헤란로 노른자위, 현대자동차 부지 등 주변의 개발 호재도 잇따른 입지이긴 하지만 과연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요?



와는 별도로, VSL코리아가 10월 6일 까지 잔금을 납부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더군요. 몇 일 후의 일이니 곧 확인할 수 있을 텐데, 추정키로 잔금 납부일이 또다시 연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10. 06일 현재 잔금을 납입한 것으로 보도되었고, 예정대로 프로젝트에 착수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와는 달리, VSL코리아의 매입을 삼부토건의 파킹딜 Parking Deal (지분을 진짜 매각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다른 곳에 맡겼다 다시 찾아오는 계약방식, 기업을 되사는 조건으로 파는 것/경향신문 미디어블로그)로 의심하는 시각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군요. 만에 하나 이 '썰'이 사실이라면 수많은 호텔리어를 인위적으로 해직시켜 가족의 생계를 위태롭게 한 범죄 행위나 진배 없습니다.



벨레상스 호텔 뷔페레스토랑 엘리제


좋은 분들을 만나 울적한 기분을 달래며 벨레상스서울호텔 뷔페 레스토랑 엘리제의 마지막 모습을 거들떠 봤습니다.



벨레상스의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절감합니다. 입에 올리기엔 썩 어울려 보이지 않는 나이이자 입장이긴 합니다만, 좋은 오너를 만난다는 것, '개나 돼지' 직장인으로써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운이 아닐까 싶습니다. 옳바른 생각을 갖고 있는 훌륭한 오너, 연봉이나 경제적 처우 보다 오히려 더 중요할 수 있어요.


하지만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충만하다면 이런 이슈로 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요즘엔 노력이 배반하는 더러운 꼴도 더러 봅니다만 아직도 그 노력만큼 더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건 없어요.


벨레상스 호텔리어 여러분 모두에게 행운을 빕니다.


호텔이야기

카카오스토리와 페이스북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참고한 기사


벨레상스호텔, 30일 영업종료…28년 역사 마감한다

한화생명, 르네상스호텔 사업에 2천억대 투자

"벨레상스 호텔 재개발해 역삼동 '랜드마크'로 만들겠다".. 이상준 SLI 대표

옛 르네상스호텔, 쌍둥이 복합빌딩 탈바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