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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이야기

서울 북촌 락고재/한옥호텔이 보이는 경향, 전통과 융통성

이런 전통가옥에 호텔이란 이름을 붙이는 이유는 아마도 '호텔의 서비스'를 접목했다는 마케팅적 선언 때문일까요? 


한옥호텔 

락고재 樂古齋


우리가 흔히 알던 호텔을 상상하면 곤란합니다. 어릴 적 보며 자랐던 외갓집이나 큰집의 그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바로 그 한옥이거든요. 


하지만 호텔이란 이름을 들이대도 생경하게 들리지 않을 요즘입니다. 어원을 들먹이는 건 고리타분하고요, 요즘엔 숙박시설을 통칭해 너나없이 호텔이라고 부르곤 하잖아요?! 이런 독특한 숙박 개념이 사이즈를 키우고 인지도를 확보하면 그야말로 부띠크호텔이 되기도 하는 것이죠.


서울 북촌 락고재/호텔아비아


서울 북촌이나 이화동 등 우리가 살던 민가를 고쳐 관광객을 받는 곳들의 기본적인 컨셉은 락고재와 비슷하겠죠? 전통 한옥 한 두 채를 모아 숙박 용도에 알맞도록 필요한 개조 작업을 합니다. 


그렇지만 락고재 등 몇 곳이 특히 세간의 주목을 끄는 이유는 흔히 볼 수 없는 오너의 열정에 크게 기인하는 듯 했습니다. 마케팅 노력이 작용하기도 했겠지만 기본이 부실했다면 가당키나 한 일이던가요?! 큰 돈을 들여 요지의 한옥을 매입하고요, 일반 호텔보다 훨씬 비싼 건축비를 감당해야 하며, 제대로 된 한옥을 구현해 내기 위해 인간문화재 대목장을 초빙합니다. 



오늘은 지난 포스트 '한옥 레지던스 고이'에 이어 락고재를 사진 위주로 리뷰해 볼 참입니다. 지난 글들의 반응을 보니 아마도 한옥호텔에 대한 호텔리어들의 관심은 그다지 크지 않은 듯 하더군요. 사진 위주로 가급적 짧게 작성해 보도록 하죠.  


관련글 1: 호텔리어의 눈으로 본 한옥호텔 [링크]

관련글 2: 전통과 현대의 아름다운 공존, 한옥호텔 고이 [링크]


서울 북촌 락고재의 입구 솟을대문 


입구부터 범상치 않은 포스를 풍기는군요. 솟을대문은 일반 한옥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에선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디지털도어락이 달려 있고, 고객들에겐 비밀번호를 배포하는 듯 하더군요.


서울 북촌 락고재


솟을대문을 지나면 바로 나오는 입구의 모습인데, 작은 숲 그리고 장독대의 운치도 좋군요. 대문을 지나면 바로 마당이 나오는 일반적인 한옥의 그것과는 다른 형태인데, 아마도 애초 있던 한옥의 구조 탓일까요? 마치 제 어릴적 기억에 아직 남은 외갓집의 그 좁고 길었던 뒤안길인 듯 했죠. 본채로 가려면 이 예쁜 길을 돌아 들어가야 합니다. 


락고재가 가진 내력은 범상치 않더군요. 이곳에 있었던 130년된 진단학회의 건물과 주변의 민가 3채를 함께 인수해 크게 손을 봤다고 해요. 2003년 부터 손님을 받았다니 이곳의 오너 안영환 대표께서는 꽤 오래 전부터 한옥이 가진 숙박시설로써의 가치를 주목한 듯 했습니다. 


입구를 돌아 나오자 보이는 락고재 마당의 모습


마당에 자욱한 저 연기를 본 저는 이내 애틋한 감회에 젖어듭니다. 어둠이 내리며 하늘이 검푸르게 변해가던 저녁 동제 때, 밥짓는 푸른 연기가 정지에서 마당으로 번져 나옵니다. 살팍에서 하릴없이 놀던 어린 몽돌은 외할머니의 찾는 목소리를 쫓아 집으로 돌아가곤 했죠...


비교적 큰 마당을 가졌군요? 이 마당을 둘러 모두 4채의 한옥이 '□' 형태로 배치되어 있는데, 도심의 한옥 치곤 꽤 큰 규모입니다. 


참고로, 북촌의 한옥들은 모두 일제 시대에 다시 조성된 것들이라는군요? 따라서 사극에 나오는 수 십 칸 짜리 한옥을 이곳에서 찾으면 곤란하고요, 한옥의 전형이라 일컫는 마당의 형태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락고재 아궁이와 가마솥


저 아궁이는 군불로 락고재의 찜질방을 데우는 역할을 하기도 하겠지만, 저 같이 오래 전 한옥을 기억하는 사람에겐 옛날을 추억하는 징표로, 생경한 이국 문화를 경험코자 하는 외국인에겐 전통가옥 한옥을 상징하는 아이콘의 하나로 작용하겠죠.


락고재의 대청마루와 서까래


아름답지 않나요? 앞뒤가 시원하게 뚤린 대청마루, 천정 회벽에 가지런히 뭍힌 서까래 그리고 세월에 닦여 결을 날카롭게 드러낸 나무 마루...

 

한옥은 온통 창과 문입니다. 양식 건물과는 달리 외부와 단절되지 않고 안과 밖이 소통합니다. 한옥의 큰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이 개방성이라죠? 개인적으로, 들어열개 분합문을 보고 싶었는데 락고재엔 설치하지 않았더군요. 하지만 대청마루 기둥의 설렁줄을 보곤 아주 반가웠습니다.


서울 북촌 락고재


그리고 마당,,,


한옥의 마당은 이벤트의 공간이었다더군요. 결혼식이며 돌 등 잔치와 장례식...[각주:1] 대청마루와 마당에서는 항상 이벤트와 스토리가 넘쳐 났었죠.



무지랭이 몽돌에게 락고재의 마당은 왠지 낯설어 보였습니다. 수많은 사연을 간직하고 있던 그 옛날의 마당이 아닌 듯 했고, 오히려 인공 정원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데, 어쩌면 당연한 변화일 수도 있어요.


마당은 사라져갔고, 마당을 잃은 현대의 집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마당은 더이상 이벤트가 일어나는 공간이 아니라, 그저 조경의 일부일 뿐이니까요.


락고재 찜질방


놀랍게도 락고재에는 찜질방이 있습니다. 외국인 고객들의 반응도 꽤 괜찮다고 하네요?! 당연히 전통 한옥에 없던 어메너티이고요, 외국인이 좋아할 만한 우리 문화요소를 가옥에 추가한 것입니다. 


락고재는 겉으론 꽤 엄격하게 전통을 고집한 듯 보이면서도 속을 뜯어보면 여러 곳에서 융통성을 발휘했더군요. 한옥호텔을 보는 오너의 철학이 그렇습니다.


서울 북촌 락고재의 객실


락고재에는 4개의 객실이 있습니다. 사이즈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모두 비슷한 차림새를 하고 있군요. 당연히 침대는 없고요, 딱딱한 구들 바닥이 익숙치 않을 외국인들을 위해 요를 3개 겹쳐 깔았습니다. 


이 좌식문화 역시 한옥이 가진 대표적인 특성입니다. 외국인들엔 좀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새로운 문화에 대한 이색적인 경험을 위해 기꺼이 감수하지 않을까요? '고이'에서도 그랬습니다만 침대가 없다고 불평하는 고객이 있다고는 듣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침대가 아니라 요와 이불은 운영에 만만치 않은 부담을 지웁니다. 매일 빨고 널어야 하거니와, 호텔에서 사용하는 침구와는 다른 종류로 사람의 손을 많이 필요로 할테니까요. 그렇지만 우리 전통을 가장 손쉽게 전할 수 있는 수단이므로 한옥호텔이 쉬이 포기할 수 있는 어메너티가 아닌 듯 했어요.


서울 북촌 락고재


역시 창호가 많지요? 마당을 바로 내다 볼 수도 있는 문도 있고.. 하지만 냉난방을 위해 창호는 단단하게 다시 손을 봐야 합니다. 아울러 천장엔 현대식 냉난방 설비가 보완되어 있군요.


현장에선 느끼지 못했는데, 사진으로 보니 바닥도 새삼스럽군요. 흙바닥도 아니고, 원목도 아닌 '옥' 마블이라 했던 듯 합니다. 구들을 깔아 땔감으로 난방을 할 리는 만무하고, 당연히 보일러를 돌리겠지요? 


그나저나 천장을 넣었는데, 고이의 객실에서는 천정의 서까래가 시원스럽게 보였었습니다. 단열 등 장단점이 있을 듯 싶은데, 언뜻 보기엔 서까래 천정이 훨씬 낫군요.


북촌 락고재, 창과 문엔 단열과 방음을 위해 유리를 덧대었습니다.


한옥을 숙박용으로 개조할라치면 반드시 바꿔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방마다 욕실과 화장실을 들여야 하고요, 창호도 다시 손봐야 하며, 그리고 냉난방도 보완해야 하죠. 그렇다고 그 많은 창과 문을 없애면 한옥의 매력이 희석되겠지요?


서울 북촌 락고재


방안에 설치한 화장실과 욕실의 위치, 그리고 사이즈는 다소 어색해 보입니다. 변기 맞은 편엔 편백나무 욕조를 설치했는데, 이 히노끼 욕조는 요즘 호텔에서도 많이 채용하더군요. 하지만 우리 전통가옥 한옥에서 이 나무욕조를 보니 꽤 이질적입니다. 주인장의 의도를 설명한 인터뷰 기사[각주:2]를 보긴 했지만 크게 공감할 수는 없었어요.



전통가옥 한옥을 얕은 수준이나마 보고 배우면서 느끼게 되는 점은 한옥이 지니고 있던 본래의 형태나 고증은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박물관을 짓는게 아니잖아요?! 전통이란 박제된 과거가 아닙니다. 우리 삶 속에 살아있는 옛날의 흔적이고 항상 현재를 반영하며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외부의 자극이나 내부의 개선 욕구를 받아들이며 변화를 추구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이죠. 따라서 한옥호텔 락고재나 고이가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는 건 아주 긍정적으로 보였어요. 이런 시도가 마침내 일반적인 경향을 띄게 되면 전통으로 굳어지게 됩니다.


북촌 락고재 대청마루 그리고 빗살무늬 문살


하지만 이런 변화를 수용하더라도, 한옥이라면 반드시 갖추고 있어야 할 '한옥의 정체성',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독특한 문화라고 쉽게 인지될 수 있는 그 한옥의 특성이 어떤 것일까요? 


온돌? 마당 문화? 아니면 안과 밖이 항상 소통하는 열린 공간? 부분이 전체를 위해 희생하지 않는 건축적 포용성? 비대칭적 아름다움? 아니면 이 모든 것??


이런 것들 중 일부가 신라호텔 등 도심에 층을 높여 짓겠다는 대규모 한옥 호텔에 차용될 요소입니다. 아마도 기껏해야 온돌과 창호의 형태 등이 아닐까 싶은데, 만약 그러하다면 그야말로 한옥의 겉모양 일부만 흉내낸 형태에 그치게 되겠죠.


북촌 락고재 대청마루의 설렁줄


용적 효율을 고려해 층을 높이면 마당은 물론이고 서까래도 사라지며 처마도 볼 수 없습니다. 마당이나 열린 공간 등 한옥이 본래 갖고 있던 형질과 이것이 내포한 문화적 무형 요소들은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죠. 아울러, 경제성이 떨어집니다. 건축비부터 침구 등 린넨류 세탁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표준화된 서양식 호텔 설비와 어메너티에 비해  비쌀 수 밖에 없어 보이거든요. 


한옥을 겉으로나마 듣고 보자니 호텔신라가 시도할 대형 한옥호텔에 대해 좀 회의적인 시각이 들기도 하는데 그 만큼이나 이 한옥호텔이 새롭게 띌 정체성이나 경향에 기대가 크기도 해요.


북촌 락고재의 별채, 무명천?을 차양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나저나 경원재, 락고재, 오동재, 취운정, 라궁 등 한옥 숙박시설에 붙인 이름들은 꽤 고상하지요? 운영 이슈들을 들여다보면 이 고상한 이름들이 왠지 생경합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있어요. 우리나라에선 비교적 새롭게 시도되는 숙박시설이니 만만치않은 경제적 위험을 감수해야 하거니와, 각고의 노력과 실험 정신이 투입되기도 했겠죠. 그 정성에 비하면야 이 정도 화려한 이름쯤야..... 하지만 외국인 고객들에겐 다소 어려울 듯도 보이는군요. 차라리 얼마 전 리뷰했던 '고이'나 '구름에' 등의 이름이 훨씬 쉽고 정겹습니다.


어떻습니까? 한옥 호텔, 우리 눈에도 정말 매력적이지요? 


하지만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도심의 한옥을 매입해 숙박시설로써 필요한 개량작업을 하고, 그리고 계속 유지하려면 큰 비용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한옥에 대한 사랑과 우리 전통 매력을 외국인에게 선보이겠다는 사명감 없이 상업성만으로 접근하면 이런 한옥호텔은 가망 없어요. 대형 호텔의 경우는 더더욱 그러하겠지요. 대형화하면 한옥의 매력이 희석됩니다. 이 한옥을 대형 호텔, 그리고 기껏해야 10평 남짓한 그것의 객실이 이 한옥의 아름다움과 까탈스러움을 어떻게 절충해 낼 수 있을까요?


정체성이 좀 다릅니다만 훨씬 규모가 큰 경원재를 일단 좀 보고 다시 오겠습니다. 



참고한 글

락고재 안영환 대표. 한옥의 대중화, 차별화에 대한 고민 [링크]

한옥은 삶의 터전이기 전에 자연철학의 배움터 [링크]

나비효과와 한옥호텔 [링크]

우리나라 한옥호텔 [링크]



참고로, 락고재에서는 한식 코스요리 주문이 가능합니다. 이곳에서 조리하는 건 아니고, 안영환 대표께서 운영하는 명동의 진사댁이란 곳에서 음식을 가져온다더군요. 가격은 10만원 정도인 듯 했습니다. 아울러, 이곳에선 다도, 김치담그기, 가야금 거문고 연주, 명창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고 해요.

  1. 당신이 상상한 모든 것, 한옥에 있다. by 한옥연구소 이상현 소장 https://storyfunding.daum.net/project/4384 [본문으로]
  2. 그가 누마루나 온돌처럼 한국적인 부분에 집중하면서도 ‘편백나무 월풀 욕조’처럼 새로운 요소를 신경 쓰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아시아권은 서로 유사한 문화를 공유하고 있어 단지 문화적인 것으로도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 얼마나 쾌적하고 좋은 경험을 줄 수 있느냐의 문제에요. 한옥에서 편백나무 월풀 욕조에 몸을 담글 수 있다면 아마도 한옥에 대한 호감이 더욱 커질 겁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