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위급 늙은 호텔리어께서 지인 한 분을 만날 단촐한 자리였어요. 오지랖 늙은 몽돌은 실례를 무릅쓰고 벤치마킹을 핑개삼아 냅다 동석하게 되었는데, 그러길 정말 잘했다 싶더군요.
이곳 오너로부터 금과옥조와 같은 말씀들을 들었습니다만 호텔리어들께 참고가 될만한 내용들 위주로 글 하나를 꾸며 보도록 할까요?
더 라운드 the Round
오너 김정석 대표님은 꽤 유명한 분이시더군요. 오래 전부터 모던 차이니스 레스토랑 이닝 Yi Ning과 JS가든을 런칭하며 세간의 주목을 끌었고, 최근 자신의 브랜드인 더 라운드 두 곳을 청담과 삼성동에 열었습니다. 오늘 방문한 곳은 2호점 더라운드 삼성점이에요.
여느 중식당과는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죠?
인테리어도 매우 현대적인데, 딱딱한 파인다이닝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캐쥬얼다이닝처럼 산만하지도 않습니다.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 적당히 편안한 컨셉이랄까요?
천정은 마감없이 슬라브와 배관 등 구조물들을 고스란히 노출시켰는데, 최근 들어서는 레스토랑들은 대부분 이런 식이더군요. 디자인 여지를 다소 희생시키더라도 개방감을 보상할 수 있으며, 비용면의 효과도 추구할 수 있는 접근법으로 보입니다.
이건 좀 놀라운데요? 중식당에선 처음 접하는 개념인데, 바를 따로 설치했어요.
요리와 함께 다양한 종류의 주류를 즐길 수 있습니다. 퓨전의 시대, 이질이 경계를 허물며 섞이고, 기성의 관행을 대체하며 또다른 가치를 만들어 내죠.
뿐만 아니라, 더 라운드에선 중식 오마카세도 즐길 수 있다고 해요. 30% 정도의 고객이 오마카세 를 택하신다네요?
셰프에게 일임합니다. 정해진 가격에, 정해지지 않은 요리를 손님에게 내죠. 셰프는 당일 가용한 식재료를 사용, 고객의 취향 등을 고려한 요리를 만들어 제공합니다. 알다시피 일식의 개념인데, 당일 가장 적합한 요리를 셰프의 재량으로 구성해낸다는 컨셉이 어찌 일식에만 국한되겠습니까. 요즘 유행하고 있는 한우 오마카세도 마찬가지에요.
입구 좌측에 커다란 와인셀러를 설치했는데, 쿨링 방식이 일반적인 것과는 좀 다르다네요? 에어컨 방식을 사용했다는데, 저야 문외한이라 잘 모르겠습니다만 여튼 레스토랑을 구성하는 모든 것에 오너의 열정과 실험 정신이 깃들어 있더군요.
식객들 사이에선 이미 잘 알려졌더군요? 더 라운드는 코키지 프리 corkage free 정책을 고수합니다. 주종과 가격에 상관없이 고객 자신의 술을 가져와 무료로 즐길 수 있어요. 김정석 대표의 사업 철학은 이 부분에서도 강하게 어필합니다.
술은 음식을 더 빛내기 위한 구색의 하나랄까요? 더군다나, 타인에 의해 창조되고 생산된 무언가를 위탁 판매하는 행위가 사업의 본질을 구성해서는 안된다 고집합니다. 고객은 셰프의 음식 때문에 레스토랑을 찾아야 하며, 주류의 가격이나 코키지에 대한 고민 탓에 훌륭한 음식의 구매 행위가 간섭 받아서는 곤란하다나요? 따라서, 레스토랑에서 판매하는 주류의 가격 역시 낮은 수준으로 유지합니다.
'김정석 대표의 무의식에서 음식은 마치 예술작품의 하나로 승화된 게 아닐까' 생각될 정도였다니까요?!
오픈키친이라 주방이 훤히 들여다 보입니다. 새삼스럽진 않죠? 오너나 셰프의 자신감을 상징하는 도구이기도 하고, 셰프의 일거수 일투족 그리고 주방의 위생 상태 등이 고스란히 노출되니 자극이 되기도 하겠죠.
김정석 대표의 이력도 정말 대단하시더군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다 18세 나이로 호텔신라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더군요. 셰프가 아니라 버스보이로.. 이후 르네상스 호텔로 옮겨 레스토랑의 지배인까지 성장했다가 1999년 중식당 이닝 Yi Ning을 런칭하며 식객의 이목을 사로잡습니다. 김정석 대표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인터뷰 자료가 눈에 띄는데, 아래 발췌할까요?
손님에게 주문을 잘 받기 위해서는 요리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쉬는 시간에 일부러 주방에 가서 주방 사람들과 같이 요리 준비를 했어요. 한식당에서는 나물을 다듬거나 소 꼬리곰탕을 끓이고, 일식집에서는 생선 잡고 재료 다듬고, 프랑스 식당에서는 같이 육수도 뽑았죠.
이유는 제가 요리의 재료나 조리과정을 알고 주문을 받을 때 재료와 조리과정에 대해 알려주면 손님이 제 말을 신뢰하고 따르게 돼요. 레스토랑에서 어느 위치에 있건 주인은 저고 우리 집을 찾아온 손님에게 맞는 식단을 제공해주는 게 제 역할인데 그렇게 하지 못하면 자존심 상하죠. 저는 그게 싫었어요.
이런 방식으로 일했더니 이후에도 어딜 가든 항상 최고의 매출을 올렸어요.
줄처:헬스조선
이 PDR의 theme color는 하얀색인 모양입니다. PDR마다 컬러를 달리했다고 해요.
소품들도 흥미롭습니다. 메트도 이채롭고..
냅킨도 매력적이더군요. 아마도 린넨일까요? 아니면 조적이 치밀한 무명천? 호텔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냅킨 소재와는 좀 다릅니다. 부드러운 터치감과 소프트한 느낌이 만족스럽군요.
옷걸이도 이채롭네요. 형태가 다르긴 합니다만 부티크형 호텔에서도 더러 채용합니다.
음식도 좀 볼까요?
메뉴에 없는 음식들인데 아마도 오마카세를 주문하셨나 보군요. 오간 말씀들이 많았던지라 정작 음식을 음미할 기회는 부족했네요.
염장질은 자제하고 그냥 일부 이미지만 올리는 것으로...
성게알을 얹은 가리비찜
이건 해삼이고~
아주 엄선된 재료를 사용한다고...
연근에 새우살을 넣어 멘보샤 식으로 만든 것인데 김정석 대표께서 추구하는 건강식 레시피의 하나인 모양입니다. 담백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맛이군요.
가니쉬에 대한 자랑이 대단했는데, 매생이 같은 것이, 벨지움산 프리셸이라고 했나? 여튼 꽤 비싼 야채라는데, 훌륭한 생각으로 농장을 운영하고 계신 분으로부터 납품 받습니다.
김정석 대표의 말씀에 따르면, 요리의 경쟁력은 원재료에 있다네요? 좋은 재료를 구입, 셰프의 절제된 터치로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다고 합니다. 훌륭한 음식은 9할이 재료, 1할이 셰프의 테크닉에 의한다는 지론인데, 그 1할 셰프 테크닉은 사실 그냥 이뤄지는게 아니죠. 부단한 경험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베이징덕(북경오리)인데요, 검색된 글들을 보니 더 라운드는 한국 최고의 베이징덕을 맛볼 수 있는 곳으로 알려졌더군요.
조리시간이 오래 걸려 사전에 예약을 해야 합니다. 30여가지 전처리 과정을 거친다네요?
껍질의 겉면은 바싹하지만 누르면 기름이 베어나옵니다. 구어메 gourmet 경지를 이미 초월한 최고위급 호텔리어의 말씀에 따르면 그 기름 맛으로 베이징덕을 먹는다죠? 꼰대 미각의 소유자 늙은 몽돌에겐 도통...
국내산 오리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중국 오리와 달라서 여간해선 베이징덕의 맛을 내기 쉽지 않다더군요. 최고위급 호텔리어의 말씀으론 중국 오리는 바구니를 씌워 키운다네요? 움직이지 못해 육질에 기름이 오릅니다. 말 많았던 푸아그라가 연상되었는데, 베이징덕 역시 어쩌면 잔인한 음식이라는 말씀이 지금도 귀를 맴도는데, 전 그닥 자책하진 않았어요. 된장찌개만 집착하는 꼰대 입맛이니까...ㅋ
이 화덕에서 베이징덕을 굽습니다. 김정석 대표께서는 우리나라에서 화덕을 제일 많이 만드신 분이라 자평하셨는데, 작년 개관한 명동 호텔의 셰프들도 한달 정도 상주하며 화덕과 베이징덕을 관찰했다는 후문이에요.
이 백주 아주 좋습니다.
직접 작명까지한 유연. 중국에서 직접 골라 원액을 수입했다는데 수정방에 20년째 OEM으로 원액을 납품하는 곳이라고 해요. 병과 상표를 고르고 라벨까지 직접 디자인했다니 그 열정 정말 대단하군요.
주종 불문, 술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저질체력 늙은 몽돌도 감탄한 아주 깔금한 맛입니다. 더 라운드 들리시면 꼭 드셔 보시길.
간장 등을 담는 용기인데, 간지나죠?
고수를 듬뿍 얹은 마라탕면
기스면인데 블로그 글을 보니 일본식이라고..
짬뽕인데 가격이 24,000원이니 호텔보다 비쌉니다?
하지만 전복 등 재료가 훌륭하네요.
면음식은 공히 도삭면을 사용하는데, 식감 나쁘지 않네요. 얇은 편이라 육수와의 이질감이 없습니다.
한켠엔 레스토랑에서 사용하는 차이나를 전시했던데, 도예가 이헌정씨의 작품이라 하시더군요. 험블한 늙은 몽돌은 당근 모르는 분인데 지금도 왕성하게 작품활동을 하고 계시군요. 가격표를 달아 둔 이유는 판매를 위해서가 아니라 음식 용기의 가치를 알리기 위한 의도라니 참..
* * *
두서없이 느낀 바를 적어 내려왔는데, 부족한 글입니다만 참고된 바가 조금이나마 있었길 희망합니다.
쌩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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