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야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어왔죠. 지인들의 얘기도 더러 들었고, 다녀온 분들이 나눠주는 이미지도 종종 봤었습니다.
아쉬움이 없었던 건 아니었어요. 호텔을 만든 사람들이 가진 철학, 그리고 하드웨어 뒤에 숨겨진 정신에 대해선 제대로 들은 바 없었거든요.
에이스호텔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시간을 보내고 싶은 공간
호텔은 기본적으로 외부인이 오는 곳임에도 지역 사람들이 모여 드는 것이 어째서 중요할까?
'진정성'에 관한 문제입니다. 고객이 뉴욕의 호텔 로비에 들어서면 거기서만 느낄 수 있는 '뉴욕적인' 무언가를 기대할 겁니다. 요즘처럼 제품에서 디자인까지 많은 것을 쉽게 찍어낼 수 있는 시대에 똑같이 찍어낸 복사판에서는 진정한 모습을 느끼기 어렵죠..... 우리가 찾는 것은 그 도시의 에너지예요. 지역 사람들이 호텔을 자신의 거실처럼 느끼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에이스라는 브랜드 자체가 콜라보레이션이라는 바탕 위에 만들어졌다. 호텔을 독점하지 않고 협업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호텔은 하나의 도시입니다. 호텔을 짓는다는 건 일종의 커뮤너티를 짓는 것과 같아요. 협업은 다양한 브랜드의 아이디어를 끌어들여 커뮤니티의 깊이와 풍부함을 더하는 과정입니다.
체인을 내는 것이 아니라 '컬렉션을 구축한다'고 말하는데 이건 어떤 의미인가?
체인은 똑같은 시설을 계속해서 찍어내면서 빠르게 사업을 확장하고자 하는 형태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컬렉션이라는 단어를 쓰는 이유는 지점마다 고유의 특징을 갖길 원하기 때문이에요. 각 지점이 획일적이지 않기 때문에 수집, '컬렉션'의 개념이라 말할 수 있죠.
비슷한 콘셉트를 강조하는 호텔과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배려할 줄 아는 직원을 채용하는 건 정말 중요한 과제예요.... 공간이나 프로그램 측면에서도 사람들이 경직되지 않고 편안하게 느끼는 공간을 추구합니다. 결국 '사람을 어떻게 대할까'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알렉스는 사람을 불러 모으는 데 대가였습니다. 그는 마치 큐레이팅하듯 적절한 사람을 평생 찾아 다니고 그들을 한자리로 불러 모아 창조적 일들을 성사해냈습니다.
호텔을 디자인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간은?
로비가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객실을 꼽겠지만, 로비는 그야말로 유일한 공적 공간이니까요. 어떤 사람들이 호텔을 드나드는지 한눈에 볼 수 있다보니 호텔의 현주소가 로비에 집약적으로 드러납니다.
by 매가진 <B>_Ace Hotel
이미지: 매거진 <B>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파견해 호텔이 들어설 입지를 공들여 물색합니다. 그 지역의 사람들 그리고 그 장소가 가진 정신을 관찰하고 분석하죠. 이 과정에 몇 년을 투자합니다. 결국 완성된 호텔은 또하나의 커뮤너티가 됩니다. 외지에서 찾아오는 고객과 더불어 지역 주민들도 모여들기 시작하죠. 그게 우리가 흔히 말해왔던 '스토리' 혹은 '고유의 경험'을 구성하는 게 아닐까요?
On the bridge between past and present
Reexamining the forgotten
Discovering hidden worth
3.
최근 시장에 진입한 국내 호텔들을 구경하다보면 정도의 차이를 보이긴 하지만 '좀 에이스호텔스럽다'하고 느껴질 때가 적지 않습니다. 옛말로 카피요, 고상한 요사이 말로는 벤치마킹...
선진적인 결과물을 보고 배우며 자신의 프로젝트에 응용하는 건 나무랄 일이 아니라고 봐요. 하지만 그것이 겉모양에만 그치는 건 곤란합니다. 그걸 지지하고 있는 정신과 철학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심하고 배워야 하지 않겠어요?
디자인이나 건축적 특성이 중요하지 않다는 얘길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호텔의 매력을 직관적으로 전달하며 방문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선사하니까요. 하지만 그동안 우리는 혹 겉모양이나 디자인만을 간단히 차용해 온 건 아니었을까요? 브랜드 뒤에 감춰진 그 정신에 대해서도 충분히 고민해 왔을까요? 그 정신은 호텔을 몇 번 둘러보는 것으로 벤치마킹할 수 있는게 아니잖아요. 그들이 장소를 선택한 이유, 그 지역과 사람을 호텔이란 공간에 녹여내기 위해 기울인 노력들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했어야 합니다.
이미지: rctom.hbs.org
4.
서울 유력 5성 호텔들의 대규모 레노베이션 뉴스를 최근 공유한 적이 있었더랬어요. 이내 한탄섞인 댓글들이 달리더군요.
'이런 식의 대규모 공사가 아니라면 호텔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댓글들에 단 제 답글은 스스로가 보기에도 좀 궁색했었는데, 에이스호텔의 정신을 눈대중하고 난 후에야 그나마 좀 떳떳해 보이는 답글이 생각나더군요.
호텔을 건물로만 봐왔기 때문이 아닐까요? 정신이 살아 숨쉬는 '공간'으로 생각할 여유가 아직 없었던 탓입니다. 번듯한 건물을 지어 휘황찬란한 샹들리에를 걸고, 훌륭한 외모에, 노련한 스킬을 갖춘 호텔리어로 채우면 충분하다 생각해 왔겠죠.
하드웨어에 덧입힌 아름다운 색은 결국 바래고 낡습니다. 유행이 한차례 시장을 휩쓸고 지나면 한때 찬란했던 그것들은 가치를 상실해가며 거추장스러운 과거로 퇴색합니다. 만약 호텔에 무언가 값진 정신이 깃들어 있다면 좀 다르지 않을까요? 광택이 잦아들어도 그것이 지닌 가치마저 덩달아 상각되진 않을테니까요.
10년을 주기로 호텔이 대대적인 레노베이션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오너가 호텔이 아니라 건물을 지었기 때문이라고 봐요. 서비스 퀄러티를 강조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어쩌면 그것 외 달리 내세울만한 게 없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건물이 아니라 공간과 커뮤너티를, 그리고 가치를 지어 올렸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5.
그렇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건 일개 호텔리어의 입방아에 간단히 오르내릴 성질의 것이 아니겠더군요. 우리나라처럼 좁은 땅덩어리에, 동질성을 곧 미덕이라 강조해 온 문화와 국민성, 두드러진 차이를 보이지 않는 지역색.... 우리 여행산업과 호텔의 사업 환경은 결코 우호적이지 않으며, 위험을 감수하기엔 호텔의 덩치가 너무 비대합니다.
알렉스 콜더우드 등 에이스호텔을 만든 이들은 더군다나 수익을 추구하기 위한 모델로 호텔을 고려한 게 아니에요. 그들은 호텔에 대해 몰랐던 사람들입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그 공간을 함께 가꾸어 나가는 것 자체를 즐겼던 이들이라더군요. 하지만 '주주이익 극대화'를 부르짖으며 호텔을 운영하던 오너들에게, 혹은 펀드를 구성하고 호텔이라는 건물을 지어 올린 후 되팔 생각을 하는 투자자들에게 이런 어퍼로치를 기대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 것일까요? 훌륭한 호텔은 수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이들에 의해 결코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매거진 B
6.
폭증하는 공급으로 신음하던 시장은 사드 이슈까지 겹쳐 ‘멘붕’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갖은 잡음과 아우성들이 난무하는 혼돈의 시기. 하지만 와중에도 희망의 싹은 자라고 있어요. 지탄받고 있는 그 공급들 중에는, 그것이 카피이거나 벤치마킹이거나 혹은 전혀 새로운 시도이거나, 그동안 우리가 흔히 볼 수 없었던 정체성을 표방하는 곳들도 없지 않습니다.
다르지 않으면 도태되고 맙니다. 에이스호텔과 출발점은 다를지라도 생존을 위해 다양한 가치들을 목표로 다양한 도전들이 시도되고 있어요. 이는 곧 우여곡절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 호텔 산업이 시나브로 성장해가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에이스호텔이 추구하는 그 정체성만이 유일선일 순 없겠죠. 세상에 수없이 존재하는 호텔들이 추구하는 다양한 정체성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사랑은 흐르는 것이며, 유행이란 끊임없이 바뀝니다. 시장에서 현재 뜨겁게 수용되고, 호텔리어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에이스호텔 역시 천천히 잊혀져 가겠죠. 또다른 무언가가 새롭게 시도되겠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봐왔던 그런 대형 레노베이션에 의한 건 아닌 듯 하군요.
*이 포스트는 호텔아비아 2017년 9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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