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희한한 호텔을 다 봤네요?
장장 25년을 호텔리어로 살아왔던 저 늙은 몽돌조차 듣지도, 보지도, 상상하지도 못했던 호텔입니다.
‘ 0성 Zero Star 호텔’
5성 특급도 아니요, 2성이나 1성도 아닌 0성 호텔이라네요? 당연히 세계 최초 그리고 유일한 호텔일 것이라고 오너가 주장하고 있어요. 하지만 더 희한한 게 따로 있습니다.
험산준령 산머리,
벽도 없고 지붕도 없이
더블배드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죠.
하지만 그 이름도 찬란한 '럭셔리 프레지덴셜 스위트형 베드 1'
이미지: Null Stern
이게 무슨 럭셔리 호텔 객실이냐고요?
럭셔리한 무언가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에요.
7성급 럭셔리 호텔의 상징 버틀러 서비스가 제공됩니다. 호텔에 도착하면 무료 웰컴 칵테일이 서빙되고요, 매일 아침 오더 메이드 조식도 드실 수 있죠. 홈페이지를 보니 구색도 제법 다양한 모양이던데요?
금고도 있고, 전원도 들어와요. 원한다면 파자마도 제공됩니다.
이미지: Null Stern
체크인 하자마자 아날로그식 티비 (위 이미지)를 통해 라이브한 날씨 예보와 ‘오늘의 개그’를 전하는 버틀러는 호텔에 머무는 내내 지척에 대기하며 밀착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턱시도 대신 장화를 착용한 그 버틀러는 아펜젤의 농부라고…
이미지: Null Stern
개그하냐고요?
아름다운 스위스 아펜젤에 실제 존재하는 호텔이에요
하루 숙박비가 300달러 정도인데 그 '럭셔리'를 감안하면 꽤 저렴한 편이로군요?ㅋ
전세계로부터 예약이 쇄도하고 있다고…
하지만 매년 2/3 정도의 스테이는 취소되고 맙니다.
그리고 호텔은 매년 장소와 컨셉을 달리하며 옮겨 다닌다네요?
이 호텔은 스위스 예술가들 (conceptual artists)의 작품이라고 해요. 호텔의 이름은
‘Null Stern * the only star is you’
‘유일한 별은 바로 너’…
그 슬로건 그리고 예사롭지 않은 정체성을 보자니 급심각해지는군요.
이미지: Null Stern
호텔은 흔히 ‘별’이란 잣대로 등급이 매겨지잖아요? 그 등급이란 게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아이콘이긴 합니다만 호텔의 모든 걸 재단하진 못해요. 급변하는 세상, 그 경직된 기준이 되려 걸림돌로 작용할 때도 더러 있죠.
고유한 로컬의 경험이라는 새로운 가치가 조명 받고 있는 요즘, 세계를 주유하는 여행객들은 호텔의 화려한 치장을 들추며 겉으로는 드러나 보이지 않는 뭔가가 열성적으로 희구합니다.
그 스위스의 ‘0성’ 호텔에서는,
화려하지만 매마르고 고단하기만 한 그 현대의 일상으로부터 피난해, 비로소 자아를 되돌아 볼 기회가, 그마저 아니라면 적어도 기억에 오래 남을 경험 정도는 허락되지 않을까요?
럭셔리란 과연 무엇인가?
위압적인 빌딩이나 휘황찬란한 샹들리에, 세련된 서비스 등 누구나 돈으로 교환할 수 있는 그런게 아니라,
풍찬노숙, 지붕없는 하늘을 이고 자더라도 당신이 스스로를 비로소 되돌아 보게 된다거나 혹은 타인이나 타지로부터 당신이 알지 못했던 뭔가를 느끼게 되는, 그 독특하고 흔치 않은 경험같은 걸 의미하는 건 아닐까요?
스위스의 예술가들이 그 희한한, 지붕과 벽도 없는 침대와 시덥잖은 조크를 던지는 장화신은 농부 버틀러로 판매하는 건 혹 그런 럭셔리한 가치 아닐런지요? 그런 걸 갖추지 못한 '별'들은 더이상 고객에게 어필하기 힘들어진 세상입니다.
이미지: Null Stern
그나저나 이로써 늙은 호텔리어가 죽기 전에 꼭 가 봐야 할 호텔 버킷리스트에 또 하나의 호텔이 추가되고 말았군요. 고단한 일상으로부터 탈출해 '세상에서 유일한 별'을 찾아 떠나고 싶습니다.
별은 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너 자신
결국 여행이란 너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참고로, Null Stern 호텔은 BBC가 선정한 '죽기 전에 가 봐야 할 호텔' 스위스 에벤알프의 에셔 Aescher 산장 옆마을에 있답니다.
예약은 아래 링크에서 가능하고요, 환불은 불가능합니다.
참고한 기사
World’s First Zero-Star Hotel Opens in the Mountains of Switzerland
- 홈페이지에 실제로 소개된 표현입니다. ... bed in a Presidential Suite without walls or roof that sits at on the top of the Göbsi hill at an altitude of 1,200m overlooking the Alpstein mountains, approximately 2.3 km from the village of Gonten. [본문으로]
- 대신 좀 떨어진 대체 숙박시설 Backup Lodge에 투숙합니다.지불이 완료되면 취소해도 환불하지 않는다네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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