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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이야기

한식세계화와 특급호텔, 호텔리어가 말한다! 이렇게 해보면 안되겠니?

 

 

지난 일요일이었습니다.

 

가족들과 동네 식당에 저녁을 먹으러 나갔더랬지요?!

콩나물국밥 전문인데 저희는 매운김치찜을 가끔씩 먹으로 오는 곳입니다.

 

들어서자 아리따운 서양여성이 섞인 외국인들이 한 상을 차지하고 있더군요. 개의치 않고 의례히 먹던 음식을 시켜 기다리고 있는데 또 한 무리의 외국인들이 들어옵니다. 자리가 마땅치 않아 저희 테이블을 그들에게 양보했는데,

 

올??? 아주 익숙한 우리말로 '김치찜'과 카스를 주문하네요?

 

 

 

 

아마도 그랜드힐튼에 투숙중인 외항사 승무원이거나, 아니면 그랜드힐튼의 레지던스, 그랜드스위트 Grand Suite에 거주하는 분들인 듯 했습니다 (관련글: 그랜드힐튼호텔, 레지던스계의 할배).

 

 

여러분들껜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겐 이런 광경이 낯설지 않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호텔 주변에서도 흔히 봐 왔거든요.

 

야근을 하다 호텔 앞의 식당으로 늦은 저녁을 먹으러 가면, 좁고 허름한 식당에 일본인을 비롯한 외국인들이 두어명씩 짝지어 앉아 우리가 평소 먹던 음식으로 맛있게 식사를 합니다. 삼결살이나 불고기, 된장찌개가 주종이긴 하지만, 종종 동태찌개가 놓여 있기도 했고 청국장을 먹기도 하더군요.

간혹, 이들 메뉴를 스티로폴 용기에 담아 호텔방에 가져 가는 외국분들도 본 적이 있었는데, 주변에 널린 편의점이나 서양식 메뉴를 내는 식당을 두고 우리 한국인의 입에만 맞을 듯한 이런 음식을 찾는 걸 보곤 신기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지난 정부 때, 주무 부서 문광부의 前장관이 어느 기자 간담회에서 말하길 "호텔에서 파는 2만원짜리 된장찌개를 누가 먹겠냐, 호텔 한식당은 김치찌개, 된장찌개를 팔 게 아니라 집에서 못 먹는 궁중요리 등을 정갈하게 만들어 누가 먹어도 제대로 대접받았다는 느낌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참 좋은 말입니다. 하지만 외국인들이 기십만원짜리 궁중요리를 먹기 위해 과연 호텔로 올까요?

 

 

 

 

 

물론 호텔내의 식당에서도 외국인을 흔히 볼 수 있긴 해요. 하지만 국내 특급호텔 레스토랑의 주된 고객은 모임이나 기념일, 직장의 특별한 이벤트로 오는 내국인으로 바뀐지 오래입니다. 

 

종종 말씀드렸습니다만, 외국인 고객이라 해 봐야, 사업차 한국으로 처음 출장 오는 분들이거나 혹은 접대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의 외국인 파트너가 대부분이겠죠. 외국인들이 한국의 길바닥에 조금이나마 익숙해지고 지하철 노선도가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하면, 화려하기만 하고 별다른 특색도 없이 딱딱한, 하지만 가격은 엄청 비싼 호텔의 식당을 이용해야 할 특별한 이유를 찾기 쉽지 않습니다. 주변 천지에 먹거리가 널린 마당에..... 

 

 

 


 

 

저희 회사만 해도 그렇습니다. 종종 싱가폴 본사에서 고위실무진들이 여러 이유로 종종 출장 나옵니다만 이들과 호텔에서 식사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저번에 소개드렸던 곳 (관련글: 호텔리어의 흔한 술자리), 우리가 평소에 다니던 곳으로 모시고 가지요. 

 

제 경험으론 이런 곳을 훨씬 좋아합니다. 꺼리낌도 전혀 없어요. 더군다나, 이런 곳이 그 분들에게 낯선 곳도 아니더군요. 욕하면서도 보는 우리 막장 드라마의 지대한 공功을 새삼스럽게 느끼곤 합니다...  

 

호텔리어의 흔한 술자리, 종로 3가 고창집

 

 

여담입니다만, 재작년인가에 출장 나오셨던 싱가폴 골드미스 두 분은 자꾸 빨간 텐트집으로 가 보고 싶다고 하더라구요? 

엉?  빨간집??????

"아, 글쎄 그 티비에서 여친과 헤어지거나 sorrow 있을 때 가서 tear 흘리며 bottle째 drinking 하는 곳;;;;"....

 

어딘지 짐작되시지요?? ......................... 예, 포장마차였습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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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세계화의 취지를 부정하는게 아닙니다.

 

매년 천만에 달하는 외국 관광객이 서울로 밀려 들어옵니다. 제 짧은 생각으로는 오히려 내실부터 다져야 할 때가 아닐까 싶어요. 한식이 뭐 별거랍니까?! 우리조차도 쉽사리 맛 보지 못하고 구경조차 힘든, 특급호텔이나 고급 요정스탈 식당의 데코 쩌는 퓨전 레시피가 아니라, 우리가 평소에도 부담없이 즐겨 먹는 바로 그 음식들이겠지요. 이를 외국인의 입에도 군침이 돌게 재료를 고치고 용기를 개선하는 작업들을 반대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정이 이러한데, 수백억씩 들여 가며 만만치 않은 국내외 잡음을 무릅쓰고 외국 배우들을 내세워 쑈를 벌일 필요가 과연 있었을까요?

 

관련글: 한식세계화와 특급호텔 한식당/왜 나만 갖고 그래?

관련글: 한식세계화 실패, 이젠 재벌 대기업에 맡겨라!

 

 

사진출저: 독설닷컴 

 

정치인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다시 각인시키기 위해, 때만 되면 언론의 확성기를 빌어 '유명 특급호텔에 한식당이 있네 없네'며 쑈를 벌일 사안도 아니요, 내가 힘들게 벌어 바친 그 피 같은 세금으로 듣보잡(브룩쉴즈도 있었다니 아주 듣보잡은 아니군요) 외국 배우들의 배를 채울 일은 더더군다나 아닙니다. 

 

그 먼 외국까지 나가 어줍잖은 선전전을 벌이기 전에, 내방하는 외국인 뿐 아니라 우리도 안심하고 사 먹을 수 있도록, 나쁜 업자들이 먹거리에 장난치지 않게 제도를 강화하고, 그리고 시중의 좋은 식당들이 알차게 성장할 수 있도록 현실적인 지원 방안도 고민해 보고, 또 이들이 좋은 식당을 손쉽게 찾을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모색하는 등, 내실을 더욱 다지는게 한식세계화의 옳바른 시작이 아니었을까요?

 

 

감사합니다.

 


 늙은 몽돌의 젊은 폐북도 있고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