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빠와 하루 여행

우리 음악과 함께 즐기는 고궁여행 - 이야기가 있는 종묘제례악


좀 우습기도 하군요?!


벌써 서너 번 되는 듯 한데 종묘를 찾은 건 모두 아이들 때문이었습니다.


말하기도 부끄럽지만, 제가 비로소 배우게 된 우리나라 역사는 대부분 아이들 숙제 때문인 듯 하군요. 


그 옛날 교실에선 그저 입시를 위해, 의미를 따져 볼 겨를도 없이 교과서의 지문들을 머리 속에 줏어 담기 급급했었겠지요. 학교라는 경직된 배움의 틀을 벗어난 즈음, 제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우리 역사는 '태정태세문단세......' 뿐이었던 듯 싶습니다. 

 

아이들 학교 숙제로 아내에게 등 떠밀려 함께 간 곳들에서야 비로소 우리의 과거를 듬성 듬성 몸으로 깨닫고 바로 보기 시작했는데, 그마저도 불과 10년 남짓이군요..... 



종묘의 정전



오늘은 제게 좀 특별한 날입니다. 


비교적 잦게 하루여행하던 막내 녀석이 아니라 큰 아이와 함께 했거든요. 이 놈과 여행 나온 건 참 오랜만입니다. 한 4, 5년은 족히 된 듯 하군요. 






그나저나 고등학교에서도 이런 숙제를 낸다니 꽤 의외로 느껴졌어요. 입학과 함께 바로 입시 준비에 돌입한 듯 여유가 없어 보였거든요. 한나절 시간을 따로 배려하고, 직접 현장을 체험해야 제출할 수 있는 이런 숙제는 더이상 힘들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어쨋거나 오히려 반갑고 안심되더군요. 마음 한 켠에 '학교의 교과 과정이 입시에만 치우쳐 있는 건 아닌 모양이구나..' 하는 안도감도 들었습니다.





학교의 숙제는 아마도 우리 전통음악 '국악'에 관계된 것이었던 듯 합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관하는 '2015 전통예술 고궁공연, 고궁에서 우리음악듣기' 프로그램 중 하나를 듣고 감상문을 적어내면 되는 숙제인데, 구성된 프로그램들은 아래와 같더군요.


경복궁 - 당신에게 드리는 왕의 음악  

창덕궁 - 인문학과 어우러지는 풍류음악회  

덕수궁 - 가족과 함께하는 동화음악회  

종   묘 - 이야기가 있는 종묘제례악 

창경궁 - 고요한 아침을 여는 풍류음악회  



어떻습니까? 타이틀만 봐도 흥미가 샘솟지 않나요? 



http://www.gung.or.kr/g/

2015 전통예술 고궁공연 - 고궁에서 우리음악듣기



그렇지만 자주 열리지 않는 귀한 행사입니다. 기껏해야 1주에 한번 꼴, 그마저도 대부분 5월과 9월에 몰려있고,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만 주로 마련되니 예약이 쉬울 리 없지요 (덕수궁의 동화음악회는 평일 저녁). 


당연히 표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숙제이니 포기할 순 없는 일, 먼발치에서라도 볼 요량으로 일정이 맞는 종묘로 무작정 출발했지요. 다행히 현장에서 편의를 봐 주시더군요. 예약을 하고 온 80여 명의 틈바구니에서 간신히 감상할 수 있었는데, 간단히 함께 해 볼까요?


이야기가 있는 종묘제례악



배우가 분한 호의무사 한 분이 정문(외대문)으로 인솔하러 나옵니다.




우리 전통음악에 대한 관심의 크기를 떠나 종묘제례악이라니 왠지 무겁고 어렵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군요. 프로그램을 주관한 곳에서도 이를 모를 리 없었겠지요?! 


일반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파격적인 구성을 선보입니다. 중간 중간에 종묘에 관련된 역사를 배우들이 연기하고, 곁들여지는 아름다운 국악이 분위기를 한층 돋우는군요. 초등생 정도의 아이들도 많이 왔던데, 부산스러운 아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내용이었습니다. 



오늘은 태조 이성계와 함께 조선을 세우고 한양천도를 설계한 정도전의 이야기가 곁들여졌습니다.


재궁-왕이 제사를 준비하던 곳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과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의 천도를 논하는 장면입니다.


정도전은 배우 이민우씨가 분했더군요. 마이크에 의지하지 않고 육성으로 연기하는데 역시 배우들의 목소리가 대단합니다. 




재궁에서는 내내 해금이 연주됩니다. 

가늘었다가 때로는 굵고, 끊일 듯 낮다가도 갑자기 처마를 칠 듯 높아집니다. 전통 음악은 단조롭다는 선입견을 가졌었는데 오늘 해금을 직접 듣고 보니 음폭도, 음색도 아주 다양하군요.



대금독주 김승겸


재궁에서의 마지막 씬이 끝나고 대금이 연주됩니다. 

세게, 또는 점점 약하게, 자유롭게 흐르는 그 구성진 음율은 그야말로 심금을 울리는군요. 전 이 같은 슬픈 가락이 싫었습니다. 



자리를 전사청으로 옮깁니다.


종묘 전사청 - 제례에 사용되는 집기를 보관하고 음식 등을 준비하는 곳


정도정과 이후 왕좌에 오르는 이방원의 날 선 설전이 오가고 있군요.


정치는 민본 民本해야 하는 것.... 그것이 왕권에 의한 것이거나 혹은 신권에 의한 것이거나, 그 형태가 본질일 수는 없습니다. 


'민주주의'란 화려한 포장지로 치장한 요즘의 정치판은, 왕이란 허울 좋은 이름을 차지하기 위해 정적과 형제들을 살육했던 그 때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국민은 안중에도 하나 없이 정치꾼들 자신의 탐욕에만 거리낌 없이 충실하군요....



아쟁산조 - 김범식


혼돈스러운 정치판을 아름다운 아쟁의 선율이 씻어냅니다.....



종묘제례악이 연주될 정전 앞으로 옮겨 볼까요?


종묘 정전


종묘의 정전은 볼 때마다 새롭군요. 모든 화려한 장식들을 배제했고, 그 흔한 단청도 없이 주칠을 했습니다. 소박하며 단조롭습니다. 하지만 그 간결한 미는 정전을 더더욱 엄중하고 웅장하며 장대하게 보이게 끔 하는군요.



종묘제례악


소개 책자에 의하면, 오늘 연주되는 것은 해마다 5월, 정전에서 열리는 세계무형문화유산 종묘대제의 종묘제례악이 아닙니다. 종묘제례악의 문화, 예술적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종묘제예악보존회에 의해 무대화한 것이라는군요.


 

저질 체력의 소유자인 아빠는 이미 집중력을 잃었고 음악은 뒷전으로 밀렸습니다.... 그나마 편한 사진 촬영에 몰두했지요.


간간히 듣는 음율은 역시 이해하기 쉽지 않더군요. 오히려, 좌측 편의 무원의 율동이 눈에 들어옵니다. 춤을 춘다지만 동작의 변화는 아주 느리고 단순하며 경건하군요.



영녕전 - 정전에 비해 규모는 다소 작지만 웅장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오늘도 아이들 덕분에 좋은 공부를 했군요. 

아울러, 궁에서 아름다운 우리 선율과 함께 맞는 가을도 아주 훌륭합니다.


우리 음악과 함께하는 고궁여행, 외국인에게 소개하고 싶은 것



최근에 선보이는 고궁 프로그램들은 꽤 괜찮군요. 내실을 다져 온 공연기획의 역량이 작용하지 않나 생각되는데 4, 5년 전의 수준과는 차원을 달리합니다. 오늘 본 '우리 음악과 함께 즐기는 고궁여행 프로그램' 역시 아주 새롭고요, 그리고 알차며 흥미롭습니다. 


조금 더 자주, 그리고 외국 관광객들에게도 잘 홍보되어 더욱 많은 분들이 즐길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긴 했습니다. 



우리 음악과 함께 한 고궁에서 짙어져 가는 가을을 만끽해 보시기 바랍니다. 연인끼리도 좋지만 감수성 예민한 아이들과의 가족 여행지로도 손색이 없군요. 






몽돌과 친구가 되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