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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이야기

모텔, 불륜이 잉태한 원대한 가능성/호텔과 모텔의 아리송한 관계

고단한 삶을 피해 온 하룻밤 쉘터

이성이 이완되고,

야릇한 해방감이 취기와 더불어 넘실거리는 뒷골목


휘황찬 네온사인을 내걸어

유흥가 곳곳을 선정적으로 밝히는 그것

 

모텔....


본래 용도인 '숙박'이란 개념은 점점 퇴화되었고, 우리 사회의 시대상을 반영하며 다른 모양새로 변이해 왔다. 요즘 젊은 세대의 인식은 어느듯 달라진 듯 보이지만, 좀 중늙은 세대에게 모텔은 인간 욕망의 배출구, 혹은 불륜의 온상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이미지: 민주신문

 

하지만 최근엔 여러 변수들이 맞물려 또다른 변화의 조짐이 엿보이고 있고, 이는 그동안 데면데면한 사이였던 호텔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모텔은 본디 자동차(motor)와 호텔(hotel)의 합성어이다. 한여름, 가족과 함께 자동차로 긴 여행을 떠나는 미국 중산층의 소박한 꿈을 겨냥해 주로 하이웨이 도로변 생겨난 저럼한 숙박시설이었고, 1900년대 초반 미국에서 처음 생겼다.

 

한국형 모텔

 

하지만 대한민국의 모텔은 전혀 다른 형태로 바뀌어 번창해왔다. 

 

한국에서 대중 숙박시설은 1세대 여인숙(또는 여관), 2세대 장급 여관, 3세대 초기 모텔에 이어 최근엔 고급형 모텔로 빠르게 진화한다. ‘장’들이 대세였던 여관들이 모텔이란 이름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은 88올림픽 직전인 1987년 무렵부터란다. 장급 여관보다 한 수 높고 호텔보다는 아래인 중간 단계라는 것을 강조하는 이름이라나?[각주:1]


이들의 '손님'은 본고장의 경우처럼 긴 자동차여행을 떠난 가족단위 여행객이 아니다. 새로운 변화로 모텔에 대한 인식이 급하게 바뀌고 있다고는 해도, 아직까지 이들이 제공하는 주력 가치는 '적절한 장소를 찾지 못해 은신했던 욕망이 이목을 피해 배설되는 공간'이다. 이들에게서 '숙박'이란 본연의 개념은 이미 거추장스러운 것이다.


모텔경영학 제1장 ‘돌리고 돌리고 돌려라’


이런 모텔들은 얼마나 될까?


한때 전국의 찻집보다 많다며 화제가 되기도 했고 '대한민국에 유독 많은 건 교회와 모텔이다'라는 우스갯 소리도 있었다는데, 어쨋거나 우리나라 숙박 시설을 통털어 가장 많은 형태가 이 모텔이다. 2014년 기준 관광 호텔이 서울 기준 215개인데 반해 여관/모텔은무려 2,900개소. 전국 단위로는 약 2만 5천 곳이 영업 중이다 (출저: KOSIS).


놀러가는 곳?


하지만 새로운 변태가 진행중이다. '야놀자'나 '여기어때'의 티비 광고를 본 적이 있는가? 5, 60대 올드한 세대에겐 좀 민망해 보일 수 있지만 공중파 황금 시간대에 버젓이 모텔을 광고한다. '모텔은 잠 자는 곳이 아니라 놀러가는 곳'이라나?


모텔에서 달리 뭘 하고 노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노릇이지만, 그동안 특급 호텔들이 대중화를 향해 변화해 온 궤적을 되짚어보면 모텔의 이런 낯선 주장에 대놓고 반기를 들기엔 어딘가 불안하다. 세상이 변하는 건 꽤 느닷없기도 하고, 필자 역시 젊은 세대의 노는 양을 이해하지 못하는 중늙은 세대의 일원이다.


South Korean 'love hotels' clean up act to woo youthful clients


 기저엔 우리 사회의 성의식 변화와 달라진 소비행태, 그리고 이에 편승해 일부 선도 모텔들이 새롭게 포장해 낸 가치가 있다. 


젊은 세대들은 모텔 출입을 더이상 주저하지 않으며 혈기왕성?한 4, 50대도 그 영향권을 벗어나긴 쉽지 않다. 불륜은 더이상 위법한 것이 아니며 불륜과 로맨스 사이의 경계도 날이 갈 수록 모호해진다. 아울러, 드나드는 이들을 마냥 불륜 커플로 예단해 곁눈질하면 큰 코 다칠 수도 있다. 요즘은 그 격했던 젊은 시절을 추억하며 쇠한 스릴을 즐기는 부부 사이도 꽤나 출입한다.


그렇다고 모텔 산업이 중흥기를 구가하고 있지는 않은 듯 하다. 경기가 불황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면 욕망도 함께 잦아드는 것일까? 모텔들이 스스로의 처지가 만족스러웠다면 위 같은 리스키한 변화를 모색할 이유도 없었을 터, 새로움을 추구하는 지금의 모습은 어쩌면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사투의 한 단면일 수도 있다.



원래도 후미진 곳이라 어디에서도 이들의 업황을 눈대중 할 수 있는 자료를 찾을 순 없었는데, 여기저기서 귀동냥 한 바로는 부실한 대형 호텔들의 사정과 별반 차이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모텔 대출 증가, 이자만 겨우 내는 수준LG경제연구원).



원래 대면 대면한 사이 


호텔과 모텔은 처음부터 대면대면한 사이였다. 모텔들이 더러는 호텔이란 이름을 달기도 하지만 밥그릇도 달랐고 추구하는 바도 달랐으며 법으로 따져도 둘의 '나와바리'를 명확히 그어 놓기도 했다 (관광진흥법 상 관광호텔과 공중위생법 상 일반호텔).


하지만 불륜과 로맨스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처럼 서로의 영역을 넌즈시 뺏고 빼앗기며 호텔과 모텔 사이의 경계도 허물어지고 있다. 호텔이 모텔 성공의 조건 '필승의 3회전'을 흉내내며 대실 영업 (전문용어로 데이유즈 Day Use라고 한다)을 대놓고 구색에 추가하고 있기도 하고, 모텔은 덩치만 크고 움직임 둔한 호텔을 비아냥거리며 최신 설비와 새로운 경험을 갖춰 젊은 세대의 욕망과 감성을 동시에 겨냥한다.


요즘엔 싼곳을 찾아 야밤 셔틀을 마다치 않는 엄청난 잠재력의 중국 단체관광객들을 메뉴에 새로 추가해 놓았다. 이들은 원래 모텔이 엄두내던 타깃이 아니다.

 

모텔의 새로운 가능성

 

한때 음습했던 그곳은 시설을 고치고 어매너티를 개선하고 있으며, 이미지를 일신해 하나 둘 양지로 나오고 있다. 이 트랜드를 지금 선도하고 있는 곳들이 티비에 광고를 때렸던 야놀자나 여기어때 등의 젊은 스타트업들이다.


이들은 숙박업 운영에 필요한 기본적인 시스템들과 스탠다드를 이식하며 모텔들을 빠르게 프랜차이징하고 있다. 이들의 호텔 '나와바리' 상륙 작전은 중국 관광객들을 야금야금 집어 삼킬 때 이미 시작되었다. 호텔에겐 미운털이 박힐지 몰라도, 저가 숙박시설에 목말라 전방향 공급정책을 좌충우돌 밀어부치던 정부에겐 마치 단비와도 같은 움직임일까?


호텔같은 모텔? 모텔같은 호텔?/모텔과 호텔을 구별하는 법

 

행정 당국에서 전국 요지의 모텔들을 대상으로 관광진흥기금을 지원하는 등 관광호텔 전환을 시도했던 듯 보이지만 모텔들의 반응은 그다지 신통치 않았던 듯 하다. 시설 투자도 만만치 않고, 그동안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여러 규정들에 구속되어야 하는데, 이를 벌충할 만한 미끼가 크게 구미 당기지 않았을 터이다.



그렇지만 보기에 마냥 불편한, 성적으로 발라당 개방적인 젊은 세대와 늙은 로맨스를 즐기는 고객에게 밥줄을 통째로 걸 순 없는 일이다. 국내 여행 문화도 몰라보게 바뀌고 있을 뿐더러, 저가 숙박시설을 찾는 외국관광객들은 앞으로도 시장에 넘쳐날 것으로 보인다.


마음을 바꾸어 먹고 초기 투자를 감당할 수 있다면 블루오션이 바로 목전에 있다. 공무원들에 의해 만들어진 지금까지의 부실한 성과를 놓고 잠재력을 과소평가하면 곤란하다. 모텔의 가능성은 결코 작지 않으며, 정부 입장에서도 저가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건물들을 새롭게 올려야 할 필요가 없으니 행정 부담을 줄일 수 있다.


혹 그 영한 스타트업들이 이미 찜해 둔 건 아닐까?




모텔 경영학 제1장 ‘돌리고 돌리고 돌려라’

The death of the American mot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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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텔, 그들이 살아가는 법칙 ‘유유상종의 지혜’


호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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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모텔경영학 제1장 ‘돌리고 돌리고 돌려라'에서 일부 발췌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