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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이야기

호텔 산업의 본질, 그리고 경쟁력을 유지하는 방법 - 호텔 레노베이션

"호텔 산업의 본질이 무엇인가??"


이건희 회장께서 신라호텔의 한 임원에게 여쭈었다는군요.


그 임원은 당연히 '서비스업'이라고 답했다지요?! 하지만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되돌아 온 반응은 아주 싸늘했던 모양입니다. 장치 산업이나 부동산업에 가깝다고 했다네요?


*    *    *

 

C일보의 지면에 소개되었던 일화입니다 (기사 링크). 엊그제 페친 한 분의 타임라인에 올랐고, 꽤 많은 분들께서 펌질을 하셨더군요. 주목해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2년이나 묵은 기사입니다. 저 또한 당시 달리 느낀 바가 있어 짧은 포스트 하나를 작성했었는데 다시 좀 볼까요?


2013년 레노베이션으로 탄생한 호텔신라의 어반아일랜드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달랐던 1980년대 개발시대, 자고 나면 땅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던 시절이니 부동산업이라 해도 이의를 달기 어려웠을 터이고, 대규모 자본을 투하한 새로운 시설로 고객을 유인한다는 점에서 장치 산업의 범주에 넣어도 틀리지 않습니다. 하물며, 우리나라에서 돈 냄새를 제일 잘 맡는다는 분의 전성기 시절 무용담이니 다소 미심쩍다하더라도 그런가보다 할 밖에요.



호텔은 흔히들 이미지를 판매하는 곳이라고 하더군요. 각고의 노력으로 비로소 형성된 호텔의 이미지는 또다른 말로 경쟁력이요, 곧 수익입니다. 


그 이미지는 여러가지 의도된 요소들이 결합해 만들어지는데, 이건희 회장께서 호기롭게 말했던 '장치裝置', 새로운 시설도 그 이미지의 중요한 축을 구성하겠고, 이에 못지 않은 다른 요소들도 함께 작용하겠죠.


호텔 산업의 본질


호텔의 물적 환경은 고객에게 소구하는 가장 중요한 이미지 요소 중 하나이기도 하고, 고객의 감성에 맨 먼저 어필하는 유인誘因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호텔이 가장 손쉽게 채용하는 수단이기도 한데, 전사적인 노력으로 서서히 살이 붙는 인적서비스 퀄러티에 비해, 돈만 쏟아 부으면 없던 경쟁력도 당장 창출해 낼 수 있어요.

 

그렇지만 아무나 엄두 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몇년 전 830여억원을 들여 공사한 신라호텔 (귀빈층 라운지)

 

5성급 호텔의 객실 하나를 개보수하는데 얼마나 소요될까요?

 

프로젝트 (레노베이션 renovation 이라고 흔히 부릅니다)의 내용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벽지나 카펫을 교체하는 soft 한 정도가 아니라 벽체를 허물어 구조를 약간이라도 손 보는 수준이면 5천 만을 가볍게 넘나들게 되죠. 경우에 따라서는 1개 객실당 1억 이상의 투자비가 소요되기도 합니다.


3, 4년 전 신라나 플라자의 경우처럼, 아예 호텔의 문을 닫아 걸고 레노베이션을 집행하는 경우는 흔치 않아요. 영업을 유지한 채 층을 나눠 공사를 하게 되는데 한 phase에 150실 내외의 규모가 일반적이지 싶군요. 500백실 규모의 호텔이라면 300억 내외? 레스토랑 하나를 제대로 고치자면 50억 내외, 중규모 연회실의 경우는 100~200억... 


모든 걸 바꿉니다. 가구, 집기 그리고 카펫은 말할 것도 없고 조명과 음향, 공조 설비, 그리고 멀쩡한 티비나 전화기 등의 가전 제품 등의 FF&E와 차이나, 실버웨어 같은 OPE도 모조리..


경쟁력의 이면


더 버거운 점은, 호텔의 그 휘황찬 시설들은 유행을 탄다는 점입니다. 이는 곧, 일정 기간이 지나면 경쟁력도 덩달아 떨어진다는 의미이고요, 여타 유형자산이 그렇듯 수명이 존재한다는 뜻과 다름없어요. 


철 지난 호텔 시설에 경쟁력을 다시 불어 넣기 위해서는 또다시 막대한 비용을 들여야겠죠ㅎ? 호텔 신라가 2013년 830여 억을 들인 7개월 레노베이션을 거쳐 재개관을 했고 플라자도 5년 전 쯤 800억을 들여 전관 공사를 했더랬습니다.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들이는 비용이 너무 큰가요? 호텔 산업의 본질이 서비스산업이 아니라 이건희 회장께서 말씀하셨다던 그 '장치산업'인 이유일테죠. 


800억 들여 부티크호텔로 재탄생한 플라자호텔 The Plaza

  

이런 비용은 당연히 호텔 가격에 고스란히 투영됩니다. 호텔의 상품이 비싼 가장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이지만 최신 트렌드로 치장된 이미지와 일상에서 흔히 느낄 수 없는 새로운 경험을 구입하기 위해 이 비싼 가격을 기꺼이 감수하는 소비자는 항상 존재합니다.

 

하지만 과연, 이 막대하고도 빈번한 투자가 타당성조사 단계에서 호기롭게 제시되었던 ROI를 온전히 실현해 내기는 하는 걸까요? 신라와 플라자는 레노베이션을 끝낸 후 기대했던 경제적 반대급부를 누리고 있긴 한 걸까요? 


혹여, 엄청난 돈과 시간과 노력을 소비한 프로젝트가 완성되고 나면, 그 지대했던 관심은 또다른, 혹은 다음 사이클의 투자 계획에 덮여, 어제의 투자에 대한 시행착오를 줄이려는 노력은 방치되는 게 아닐까요?...



종종 무력감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호텔들 사이에선 이미 빠져 나오기 쉽지 않은 관성이 생긴 듯 해요. 이런 막대한 규모의 빈번한 투자를 감당하지 못하는 그저 그런 호텔들은, 규모의 경제가 작용하는 이 같은 경쟁에서 뒤쳐지게 될까 불안한 나날들을 보내게 되겠죠.


밀레니엄서울힐튼 카페 395


이런 물적 투자에 의한 것이 아닐지라도 경쟁력을 달리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과연 없는 것일까요? 오래되고, 외형에 대한 투자가 빈번치 않아 좀 낡고 허술해 보여도, 오랜동안 형성된 무형의 서비스만으로 새로운 경험을 생산하는 건 불가능한 것일까... 


호텔은 정녕 장치산업일 수 밖에 없는 것일까요? 


에어비앤비 등 물적 요소 외의 무엇인가로 경쟁하는 형태들이 생기고 있고, 트립어드바이저나 OTA 리뷰 등 무형의 매력들이 고객의 눈에 더 쉽게 노출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고 있으니 앞으로의 양상은 달라지게 될까요?


호텔 경쟁력의 본질


머무러지 않고 항상 흐르는 유행인 듯, 대중의 가치척도 역시 변하기 마련입니다. 넘쳐나는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한없이 삭막하고 거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요즘, 소비자가 결국 희구하게 되는 건 인간적인, 더 인간스러운 그 무엇이 아닐까요? 그것은 오랜동안 호텔이 추구했다던 훌륭한 서비스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그나저나, 대한민국 굴지 재벌 총수의 전성기 무용담... 동일한 문장은 2년 전의 그것에 비해 더욱 색이 바랬더군요. 삼성과 함께 성장했던 대한민국의 호시절을 추억하며 고단한 삶을 잠시 위안하는 가십이거나, 덧없는 삶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또다른 증거.... 


기사를 다시 읽는 내내 왠지 안타까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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