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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이야기

전통과 현대의 아름다운 공존, 한옥호텔 고이 - 북촌 한옥호텔 추천

한옥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최근에 부쩍 달아오르고 있더군요. 저 또한 그 중의 한 사람입니다.


통 가옥에 대한 관광 관점에서의 관심과 접근은 원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해요. 관광이 보편화되고, 관광지로써의 매력이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하면 전통 가옥 또한 재조명 받습니다. 외국인들이 접하지 못했던 흥미로운 문화이자 새로운 경험이며, 이는 곧 관광지 매력을 구성하는 중요한 축을 형성하게 되죠. 


현지 주민들이 실제 거주하는 전통 주거 형태와 생활 방식 등을 단순히 구경하는 정도에 그쳤던 관광객들의 행태는 최근 아주 적극적으로 변화하고 있더군요. 관광 심리학을 제대로 배워 본 적은 없습니다만 관광객들이 현지 문화와 생활 양식을 몸소 체험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라죠?


고이 copyright@rohspace


관광객들의 욕구도 변화해 왔겠지만, 시장이 이런 수요를 수용하기 위해 노력해오기도 했습니다. 다시 말해 돈 냄새를 맡은 것이죠. 이 역시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고, 수요가 잠재한 낌새가 있으면 공급이 이를 부추겨 내니까요. 


전주와 경주, 안동 등 이 방면에서 한 이름 하는 관광지에서는 국내외 여행자들을 위한 대단위 한옥 숙박시설들을 조성했거나 조성 중에 있고요, 주민이 실제 거주하고 있는 곳을 상업 숙박시설로 개조하고 있는 곳들도 이미 많습니다. 서울의 북촌이나 인사동, 익선동 등지에 변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던데 '붐' 이라 표현해야 할 정도랄까요?


한옥호텔 고이

이처럼 전통 가옥이 관광 숙박시설로 외연을 확장한 사례는 외국에서 흔히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의 전통 숙박시설 료칸이 그렇고, 스페인 고성 파라도르가 그러하며 이탈리아 농촌 주택의 전형 아그리투리스가 그러했다더군요[각주:1]



늙은 몽돌은 일개 호텔리어의 신분으로, 이런 거시적인 그림은 관심 밖입니다. 단지 관광 숙박시설로써 한옥의 가능성이 궁금했을 뿐인데, 이에 대해 찾아보고 구경할 수록 쓸데없는 생각이 많아지네요. 그동안 잘 몰랐던 한옥 자체의 매력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지만 오히려 글을 쓰는데 자꾸 방해가 됩니다. 일단 이처럼 말머리가 길어지고 말았으니까요....


*   *   *


'거들떠보자! 한옥호텔' 프로젝트


오늘 저와 함께 고이 거들떠 볼 곳은 한옥호텔 (혹은 한옥 레지던스) '고이' 입니다. 프로젝트의 배경이 궁금하시면 아래 링크 참고하시기 바라고요.


호텔리어의 눈으로 본 한옥호텔


한옥 레지던스 고이


역시 서울 북촌에 입지한 한옥입니다. 더러는 호텔이라 부르고, 일부에서는 레지던스라 칭했더군요. 호텔이라 부르기엔 덩치가 작고, 한옥 게스트하우스라 부르기에도 좀 애매합니다. 레지던스라 달리 칭한 배경은 취사를 위해 필요한 모든 세간을 갖추고 있기 때문인 듯 해요.


호텔업의 관광호텔업이나 한국전통호텔업이 아닌, 관광편의시설업 중 '한옥체험업'으로 등록되었다더군요[각주:2].


북촌 옥호텔 고이


잡지에 소개된 내용들을 찾아 읽긴 했지만 방문하곤 꽤 놀랐어요. 한옥 한 채이지만 요즘 흔한 업스케일 호텔의 객실 사이즈인 7평에 불과한 크기입니다. 그 제한된 면적을 효율적으로 나눠 예쁜 부엌과 화장실, 거실을 추가했군? 이를테면, 집 한 채를 호텔식 스위트룸 (레지덴셜 스위트) 하나로 탈바꿈시켰다랄까요? 


'고이'는 우리가 흔히 알던 한옥호텔과 다소 다릅니다. 숙박 편의를 고려해 한옥의 창호나 화장실, 욕실 등을 개조한 정도에 그친 것이 아니라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켰거든요. 그야말로 세련된 '하이브리드'?...


한옥호텔 고이, 대문과 빗장. 디지털 도어락  


담장, 대문, 마당, 툇마루 등등.....


7평 꼬맹이에 불과하지만 전통 한옥으로써의 면모를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작아서 아쉬운 점들도 없지 않았지만 오히려 이 사이즈 제약은 '고이'의 정체성을 탄생시킨 주된 모티브의 하나일 수도 있어요.


이미지: 고이 copyright@rohspace


전통과 현대의 공존


정진아 대표께서는 '고이'를 구상하면서 다른 한옥들을 구경하지 않았다더군요. 의도적이었는지, 아니면 뚜렷한 주관이나 철학 때문이었는지 여쭙진 않았습니다만 오히려 그 때문에 이런 흔치 않은 컨셉이 나왔을 수도 있어요. 자주 보고, 눈에 익으면 만지는 것에도 무의식중에 베어 나오게 됩니다.


한옥호텔 고이


'고이'는 대비되는 전통과 현재를 공존시키며 뜻밖의 조화를 만들어냅니다. 전통은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는 우리의 습관이자 문화입니다. 과거와 현재는 단절된 게 아니며, 일상 생활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죠.


전통이 다양한 변화를 모색하며 변모해 가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현대판 한옥 '고이'는 전통 가옥이 시도할 수 있는 다양한 어프로치 중 하나를 선보였다고 보면 무리가 없을 듯 해요. 전통이 새로운 요구와 편의를 수용하며 발전하는 과정의 하나라고 봅니다.


이미지: 고이 copyright@rohspace


한옥은 본디 좌식 위주의 생활 양식을 파생하게 된다는데 이는 온돌의 영향 때문입니다. 책상도, 밥상도 그렇고, 방 안의 가구며 가재 도구들 모두 앉은 눈높이의 것들이죠. 


쇼파와 티테이블, 책상 그리고 선처럼 산뜻한 선반 등 한옥 레지던스 '고이'의 가구들 역시 낮고 간결합니다. 좌식 위주의 한옥 양식에, 좁은 공간을 절충하기 위한 의도도 함께 반영했는데, 여기에 투숙객 편의를 위해 현대적인 디자인과 기능을 추가했군요.


이미지: 고이 copyright@rohspace


그렇다고 낮은 쇼파와 테이블이 불편한 건 아니더군요. 머문 2시간 꽤 안락했으며, 객실이나 거실, 그리고 부엌이 의외로 좁아 보이지 않습니다.


한옥호텔 고이

고이 고이 준비한 소품 하나 하나도 공간을 채우며 저마다의 역할에 충실합니다.


한옥호텔 고이


오디오 등 가전 제품을 제외하고 공장에서 찍어 낸 물건은 하나도 들이지 않았다더군요. 모두 공예가나 디자이너의 정성 깃든 작품이거나 지방의 특산이라고 합니다.



고색이 창연한 서까래 아래의 모던한 부엌....


한옥호텔 고이


대비가 정말 매력적입니다. 


옛날 외갓집의 그 먹물처럼 어둡던 정지(부엌)은 과거에 대한 애틋한 향수이자 구부정 외할머니께서 말없이 호소하던 불편함의 추억이기도 합니다.


한옥호텔 고이


서랍장 내부엔 취사용 가전 제품들이 숨겨져 있고요, 아래 서랍에 준비된 집기와 식기들은 현란해 보일 정도이군요. 정성껏 선별해 고른 아이템들이 부족함 없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한옥과 관련한 기사들을 읽고 배우다 한옥 창호 구조에도 관심이 생겼는데 하얀색 회벽과 고동색 나무틀 (이를 '인방'이라 부르더군요)의 대비가 너무 선명하고 예쁘지 않습니까?


이미지: 고이 copyright@rohspace


한옥 호텔 '고이'의 또다른 매력은 침구에 깃들어 있습니다. 


목화솜을 넣어 만든 요를 2개 받쳤고요, 무명과 광목 소재의 이불을 얹었는데, 외국 고객들의 반응이 아주 좋다더군요. 그 까칠까칠한 감촉도 색다르겠죠.


한옥의 또다른 매력, 정성


하지만 손이 엄청 많이 갑니다. 매일 빨고 햇빛에 널어 말린다고 하는군요. 모두 관리가 어려운 소재들이라 외부에 맡기지 못하고 '가내수공업'으로... 이는 다시 말하면 '비용'입니다


그러고보면 '조심스럽게 정성을 다하여'라는 뜻의 '고이' 명패를 괜히 쓴 듯 하진 않지요?

 

한옥호텔 고이

이곳에 침대를 넣으면 공간을 모조리 죽일 뿐 아니라 한옥의 정체성을 훼손할 수도 있습니다.


그나저나 저 바닥은 좀 어중간하군요. 전통의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고이'가 지향하는 정체성과도 어울리지 않아 보였는데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요? 요즘 개량 한옥들은 대부분 원목 마루를 채용하더군요. 하지만 옛날 시골집에서나 보던 콩기름 한지 마감은 좀처럼 볼 수 없었는데 그 이유가 경제성 때문일까요?


한옥호텔 고이

'고이'의 화장실입니다. 작지만 앙증맞군요. 욕조는 없고요, 샤워 정도 가능한 크기입니다.


소품 또한 눈에 띄지요? 비누와 샴푸, 린스 등의 세면 용품은 '고이'만을 위해 제작한 '프레임' 제품이라더군요? 이런 쪽 문외한인 전 당연히 모르는 브랜드....


한옥호텔 고이


고이는 2014년 오픈했습니다. 1박 22만원, 여행객 입장에서는 결코 낮지 않은 가격이지만 레지던스 혹은 서비스드 호텔로써 그만한 가치는 하고도 남습니다.


투숙객의 70%는 외국인이고요, 그 중 절반은 3박 이상 머문다 하더군요. 만족도는 아주 높다고 했는데, 고이의 컨셉을 포함해 주인장 정진아 대표께서 이곳에 쏟는 정성을 생각하면 익히 짐작할만 합니다.


성수기엔 8, 90% 가동률을, 겨울철 비수기엔 3, 40% 정도 채운다니 듣던 바와는 달리 한옥 호텔/게스트하우스가 아주 호황은 아닌 모양입니다. 그나마 주변의 한옥 호텔들 보다 나은 사정이라네요? 


정성껏 고른 전통차 등 고객을 위해 뭔가를 자꾸 줍니다.


제한적인 채널 (홈피)를 활용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외국 관광객들에겐 구전 viral로 천천히 알려지고 있는 듯 보입니다. OTA에는 올리지 않은 듯 했는데, 홍보 차원에서 트립어드바이저 정도는 고려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었고, 에어비앤비와의 콜라보도 예정되었다 들었습니다만 아직 호스트로 리스팅되진 않은 듯 하더군요.



그나저나 내국인 투숙율이 30%에 이른다네요? 더욱 놀라웠던 건 대부분 나홀로 투숙객으로, 여행이 아니라 조용히 쉴 목적으로 투숙한다고 합니다. 고이에 머무는 시간 만큼은 제대로 휴식하길 바라는 주인장의 바램이 실현되고 있는 것일까요?


마당이 사라진 현대의 집은 더이상 옛날 한옥처럼 매일 이벤트가 벌어지는 만남의 장소가 아닙니다[각주:3]. 오로지 편안한 공간, 치열한 삶에서 벗어나 '쉼'만 제공하는 폐쇄된 공간으로 움추렸지만 젊은 현대인에겐 이런 축소된 의미의 집 조차 허락되지 않는 것일까?


별도의 비용을 지불해 호텔에 와서야 비로소 쉼을 허락 받을 수 있다니 왠지 슬퍼지려 합니다.


한옥호텔 고이


'고이'는 한옥의 전통으로 외국 관광객이 희구하는 새로운 경험을 충족시키면서도 화장실이나 부엌, 냉난방, 창호 등 필요한 곳엔 모던한 편의를 가미해 한옥이 갖는 한계를 벌충합니다. 


'고이'가 추구하는 이같은 접근법이 시장에 전혀 생소한 건 아니겠지요? 더군다나 객실 하나 달랑 갖춘 7평 짜리 한옥입니다. 하지만 상업적 가치관에 오염되지 않은 젊은 스타트업의 애정과 열정, 그리고 실험정신이 시장에 어필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이익'의 잣대를 들이대면 이런 시도는 도무지 설명되지 않아요. 따라서 대형 숙박시설에 '고이'의 컨셉을 적용할 수 있을런지 의문입니다. 젊은 오너가 열정과 애정으로 모든 걸 도맡아 하고 있지만, 몸집이 커지면 일단 손이 많이 갈 서비스들이며 표준화되지 않은 정성, 집기와 비품들은 기각되겠지요. 비용의 문제가 이내 개입하고, 높은 ADR 정도로 커버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닙니다.


고이


어쩌면 부티크 호텔이 탄생하고 그리고 최근 각광 받고 있는 배경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온갖 정성으로 유니크하고 매력적인 서비스와 제품이 생산됩니다. 하지만 비용의 문제나 확장력 한계가 곧 드러나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대형화하고 표준화하면 그 독특한 매력은 훼손될 수 밖에 없습니다.[각주:4]


어설픈 제 생각으로는, 경제성을 확보하기 위해 3, 4층, 층을 올려 짓게 되면 한옥의 매력은 대부분 희생될 듯 싶습니다. 마당도 사라지고, 서까래도 없어지며 처마도... 비싼 지가의 도심에 대형 한옥 호텔을 지을 수 없는 이유인데, 이런 면에서 호텔신라가 짓겠다는 남산의 대형 한옥 호텔이 정말 궁금하기도 해요.


이미지: 수이란 Suiran

201 스타우드의 더럭셔리컬렉션을 소프트브랜딩했습니다.


아마도 한옥호텔이 가야 할 길은 30실 일본 교토의 료칸 수이란과 같은 비도심 부띠끄 호텔이 아닐까 언뜻 생각되기도 합니다. 기회가 되면 다음 포스트에서 조금 더 상세히 다뤄 보도록 하겠습니다.


귀한 시간을 할애해 주신 정대표님과 류대표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향후 2호, 3호 점 등 브랜치를 계속 늘려 나갈 작정이라니 부디 그 뜨거운 열정과 애정이 식지 않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읽고 참고한 글


'고이' 쉬다 가시옵소서/행복이 가득한 집

침대에 사우나까지 갖춘 한옥 … 이리 오너라~ 하룻밤 어때?/중앙일보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간 한옥 호텔 '고이'/ELLE

한옥에서의 하루

설계비 높고 용적률 낮은 한옥…공간배치·동선 주의



  1. [중앙일보 커버스토리] 침대에 사우나까지 갖춘 한옥 … 이리 오너라~ 하룻밤 어때? http://news.joins.com/article/19593963 [본문으로]
  2. 호텔업 중 관광호텔업으로 등록을 하려면 최소 30실, 소형호텔업을 충족하기 위해서도 최소 20실은 갖추어야 합니다. 게스트하우스는 내국인을 투숙시킬 수 없고요, 호스텔과 함께 요구하는 시설 기준이 따로 있을 듯 보이더군요. 한국 전통호텔업 역시 충족시켜야 할 시설 기준이 따로 있는 듯 해요. [본문으로]
  3. 당신이 상상한 모든 것, 한옥에 있다. https://storyfunding.daum.net/project/4384 이상현 한옥연구소 소장 [본문으로]
  4. 따라서 대부분 독립 호텔의 형태로 존재하게 되는데, 이 역시 또다른 한계를 지니고 있긴 하죠. 전세계를 아우르는 예약망이나 마케팅 여력이 그런 것들인데 이런 부분도 OTA, 트립어드바이저 같은 메타서치 엔진을 통하거나 대형 브랜드와의 소프트 브랜딩을 통해 약점을 보완해 가고 있습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