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스토리가 넘쳐 나는 곳...
하지만 이곳을 제대로 보려면 반드시 밤을 나야 합니다. 인적이 사라진 밤의 남이섬은 낮엔 찾을 수 없는 매력을 간직하고 있어요.
살포시 불빛에 드러난 메타세쿼이아는 또달라 보이고요, 이른 아침 산으로 번져 오르는 물안개도 참 좋습니다.
아마도 그 공기 때문이었을까요?
깊은 잠에 빠져 들었고,
청량한 숲 향기가 아침 수면을 방해했습니다.
남이섬 밤의 메타세콰이어
남이섬 청평호의 아침 안개
남이섬의 아침
남이섬
이곳에서 밤을 나려면 정관루나 별장에 투숙해야 합니다.
막배는 10시 전에 끊기고,
남이섬에 달리 머물 수 있는 숙소는 없어요.
남이섬 정관루 야경
듣자니 입지 여건 때문이라더군요. 이곳은 '여관'입니다.
남이섬의 정관루는 관광호텔이 아니라 일반숙박업으로 등록되어 있어요. 이를테면 여관이나 모텔인 셈이죠. 그렇다고 유흥가 뒷골목의 그것을 상상하시면 곤란합니다. 되려 도심 특급호텔이 갖추지 못한 매력들을 소유하고 있어요.
성星급 등급 체계가 최근 도입되기 전까지 정관루엔 별 여섯 개가 버젓이 달려 있었다더군요. 그야말로 재미로 '뻥구라'인데, 이런 가벼운 위트와 재기는 정관루와 남이섬 곳곳에 숨겨져 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이런 재치를 포함해 남이섬에 입힌 스토리들은 어쩌면 기성 정치, 사회 시스템에 대한 예술가적 반발 심리의 표현으로 보이기도 했는데, 오늘은 호텔에 대한 얘기만 할 작정입니다.
호텔 정관루 전경
몇 개월 전 지인께서 올려 주신 이미지를 처음 접하곤 개량 한옥 형태를 빌린, 낡고 어리숙한 호텔 쯤으로 폄훼해 생각했더랬습니다. 하지만 실물을 본 후엔 성급하게 내린 제 선입견이 부끄러웠어요. 정관루는 '여관'이지만 시설 수준과 서비스 퀄러티는 특급호텔 못지 않습니다.
더욱 놀라운 점은 객실료입니다. 본관 2인용 일반실의 경우 99,000원 평일 할인 요금은 77,000원.... 직접 투숙해 경험하면 가격과 가치 간 괴리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객실과 도어 사이에 화장실과 욕실이 있고 중문을 따로 뒀습니다.
정관루는 3층 낮은 건물임에도 바깥으로 내다 보이는 뷰가 참 좋군요.
욕실용품은 탄 Thann과 퓨어 Pure 2가지 종류로 고객 반응을 살피고 있습니다.
남이섬 콘도별장 다알리아/객실료는 30만원 내외
청평호가 바로 내다보이는 남이섬 별장
연인을 위한 투투별장/이름이 '사슴', '청설모', '타조' 등등
투투별장/큰 창을 통해 청평호가 보이고,
투투별장/작지 않은 사이즈의 테라스도 갖추고 있군요.
정관루 로비/크지 않으나 허술하지 않습니다. 곳곳을 작가들의 작품으로 꾸몄군요.
한쪽엔 서재와 동화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배려했는데, 남이섬 야외 곳곳에도 책과 이들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두었더군요. 이 역시 '쉼'을 위한 수단이자 메시지입니다.
부띠끄형 아트호텔, 갤러리형 객실이라 자칭했더군요.
도심 인터네셔널 체인들의 브랜드 스탠다드가 구속하는 천편일률적인 객실과 다른 차원을 보입니다. 정관루의 객실은 저마다의 특색을 가지고 있어요. 최지우 방과 배용준 방 등 겨울연가 주인공 테마방이 있을 뿐더러, 작가나 공예가, 화가 등 신진 예술가들이 각 객실을 제각각의 테마로 달리 꾸몄습니다. 이들 작품은 더러 경계를 허물고 실용성을 띄기도 하더군요.
이런 컨셉은 요즘 새로 짓는 일부 도심 호텔들이 시도하고 있으며, 외국의 사례도 더러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정관루는 파격적이진 않아요. 같은 모양새의 객실들에 여러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을 달리 배치해 둔 점잖은 수준인데, 오래전(1979년) 호텔이 지어져 공간 골격이 규정된 한참 후 이런 컨셉이 새롭게 시도된 때문입니다.
도예화가 이혜경 작가의 방
꿈꾸는 일러스트레이터 한병호 작가의 방
남이섬 정관루가 추구하는 컨셉은 '휴식', '쉼'을 통한 '힐링'입니다.
남이섬을 유유자적, 걸어 구경하고 그리고 편안하게 휴식합니다. 객실엔 티비도 전화도 두지 않은 대신 책과 그림, 그리고 공예 작품들이 곳곳에 배치되고 전시되어 있습니다. 둔감한 늙은 몽돌은 미쳐 몰랐습니다만 와이프의 말로는 왠지 곤두선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작용을 한다더군요.
하지만 와이파이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으니 일종의 이율배반이라 할까요? 아울러, 요구나 문의 사항이 있을 경우 고객의 휴대폰으로 리셉션이나 본관에 연락을 취해야 합니다. 스마트폰으로 모든 걸 대신할 수 있는 세상이니 바깥 세상과의 완벽한 단절은 어차피 불가능하겠죠. 이런 곳에서의 힐링을 위해선 고객 스스로의 노력도 전제되어야 합니다.
호텔 객실 뿐만 아니라 남이섬 곳곳에 책이 비치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제주의 핀크스 포도호텔에서 느낀 바 있었던 묘한 딜레마가 다시 머리를 멤돌았습니다.
세상과 단절해 고립된 공간, 오로지 흐르는 시간과 나 자신, 그리고 소중한 관계들만 존재합니다. 혼자만의 사색도 좋고, 연인의 오붓한 데이트도 색다르며, 가족 간의 대화도 평소와 다르죠.
바로 밤의 남이섬을 경험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제가 하룻밤 쉬어갔던 랑카미가든 Langkami Garden은 말레이지아의 랑카위 섬과 결연을 맺은 곳으로 이를 기념하기 위해 조성한 시설이라더군요.
남이섬 랑카미가든
랑카미가든 안에도 잘 꾸며진 게스트하우스가 있지만 일반에 판매하진 않습니다. 특별한 손님에게나 투숙을 허락한다고 해요. 참고로 전 특별한 분으로부터 귀한 선물을 받아 이곳에 투숙했습니다.
이곳 디자인을 담당한 아티스트는 말레이지아 일러스트레이터 유소프 이스마일 Yusof Ismail이란 분입니다. 원래 코끼리 그림을 주로 그린다더니 게스트하우스 안팎이 온통 예쁜 코끼리이군요.
랑카미가든 게스트하우스
랑카미가든의 게스트하우스를 포함해 이곳 정관루 객실들의 또다른 특색 중 하나는 모두 전통 한옥의 양식을 베이스로 채용했다는 점입니다. 아마도 외국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핫스팟이기 때문일테죠.
침대 대신 한식 침구를 들여다 놓은 곳도 많고요, 한옥의 창호와 가구를 배치해 두기도 했는데, 최근 들어 한옥에 어설픈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제게 더러 참고가 되었습니다.
아울러, 남이섬 대부분 건축물들은 오래된 것들을 개보수했는데 현대적인 내부 구조에 한옥의 지붕을 새로 얹었다더군요.
호텔정관루의 리셉션센터
전통한옥이고요, 예약과 컨시어지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공간 활용은 꽤 비효율적으로 보였습니다.
정관루 본관의 카페 아일래나의 조식도 훌륭하군요.
호텔정관루의 커피숖 아일래나
호텔에 비해 가짓수는 많지 않지만 차림새는 꽤 알찹니다.
가격도 14,000원이니 객실료 만큼이나 매력적이지요?
커피숖 아일래나의 조식 뷔페
신선한 재료를 사용했고, 식재료 본래의 맛을 최대한 살려 조리했습니다.
전 원래 아침을 잘 먹지 않습니다만 구운 야채와 야채죽이 맛있더군요. 저보다 더 세련된 미각을 소유한 아이들이 더 만족스러워 했습니다.
호텔정관루의 커피숖 아일래나
위 냅킨꽂이는 소주병을 재활용한 것으로 재활용 아이템들이 남이섬을 구성한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정관루를 포함해 남이섬은 새로운 컨셉을 실험하고, 유지하며 그리고 끊임없는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저만 그렇게 느끼는지 모를 일입니다만, 생생히 살아 있는 듯한 모습이 부럽기도 했고, 무엇이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일까 고민스럽기도 합니다. 언론에 회자된 정년 80세 기업 문화도 한 요인일 수 있지만 직원들의 생각도 역시 그러한지는 알 수 없습니다.
계획에 없던 가족 여행, 이런 경험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쉼'이나 '힐링'의 가치란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리조트 호텔에서나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만 서울 근교의 작은 호텔에서 경험하게 되었군요.
도움 주신 호텔아비아 장진수 대표님, 남이섬 민경혁 부사장님, 설은식 매니저님 그리고 김민년 총지배인님께 감사 말씀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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