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 아직도 젊었던 몽돌의 눈엔 너무나 생소한, 새로운 개념의 호텔이 국내에 막 소개되기 시작합니다.
휘황찬 로비, 호텔리어들을 곳곳에 넘치게 manning한 특 1급 럭셔리호텔 그리고,
친구들과 술에 쩔어 새벽녘에 간신히 찾아 들곤 했던 유흥가 뒷골목의 여관...
이들 둘을 숙박시설의 전부로 알고 있던 젊은 호텔리어의 어리숙한 눈에 이 듣보잡 신상은 어이없을 정도로 회괴망측했더랬죠. 번듯한 로비도 없고, 반겨주는 호텔리어도 없을 뿐더러, 복도엔 음료를 판매하는 자판기와 고객이 직접 동전을 넣어 돌리는 세탁기라니...
이비스앰배서더명동 Ibis Ambassador Myeongdong의 1층 입구
호텔의 로비가 아닙니다. 하지만 Information Desk를 배치했군요.
직전 포스팅을 읽으셔야 이 포스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으니 처음 온 독자 분들께서는 먼저 위 링크의 글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여기도 링크!). 혹 귀찮아 하실 분들을 위해 직전 포스팅의 마지막 구절은 인용할까요?!
".... (중략) 이런 이유로 식음료부문의 이익율은 계속 하락해 왔으며, 연회부문을 제외하면 이익 내는 곳을 찾아 보기 힘들 정도로 수익성이 악화되었습니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호텔들이 이런 처지에 몰려 있어요. 이를 극복하기 위해 호텔업계는 크게 두가지 방법으로 반응하기 시작합니다."
호시절은 다 지났고, 호텔은 마침내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특히 호텔의 레스토랑은 그야말로 절체절명,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면 살아 남을 수 없는 변화의 순간을 마딱트렸군요.
안타깝게도, 여러가지 대안을 놓고 이것 저것 따지며 고를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달랑 하나 남아 있으니까요. 그마저도 아주 야만적입니다. 그냥 없애는 것이죠. 마케팅 노력으로 레스토랑의 영업력을 복원해 이익을 다시 창출해 내겠다는 가상한 용기는 그야말로 가당찮은 만용으로 보입니다. 옛날과는 판이하게 다른 영업환경, 모든게 너무나 척박해졌거든요.
마지막 남은 이 무식한 대안을 호텔은 2가지 다른 양상으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명료합니다. 있는 걸 없애거나, 아예 만들지 않거나...
변화를 수용한 새로운 양상
먼저, 시장에 이미 진입해 있던 대형 호텔들은 몸집을 줄여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이런 의사결정을 하기까지 긴 고민이 있었겠죠.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등 일부 호텔들은 여러 개의 영업장을 통폐합 해 하나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얼마 전에 마쳤습니다. 곧 주요 호텔들이 이런 트렌드에 합류하겠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자료를 따로 부탁드려 놓았으니 확보되는대로 좀 자세히 다뤄 보도록 하고요...)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 그랜드키친 Grand Kitchen
그럴 수 밖에요. 결손을 계속 쌓아 가거나, 하나라도 없애서 결손의 규모라도 줄이거나.... 더 유효해 보이는 대안은 없습니다. 혹여나, 독자 여러분들께서 생각하시는 더 좋은 안이 있다면 좀 알려 주시기 바라고요,,
참고로, 호텔이 생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취하는 이 마지막 대안은 사실 호텔리어들에겐 사형선고나 다름없습니다. 이 방법이 궁극적으로 겨냥하는 건 인건비이니까요. 업장을 없앤다는 건 곧 인원을 정리한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몇년 전처럼 투박한 방법이 동원되지는 않을 듯 하군요. 잡음도 크고 사회적인 파장 또한 간단치 않으며, 이런 과격한 방법이 쉬이 용납될 분위기가 아직은 아닙니다. 아마도 정년퇴직 등 자연 감소분으로 완충하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비정규직에 넘긴 일부 업무를 재조정 할 수도 있겠죠.
JW메리어트 동대문스퀘어 서울
새로운 호텔들의 경향
다음으로, 시장에 새롭게 진입하는 호텔들은 디자인 단계부터 몸집을 가볍게 합니다. 부대시설의 주요한 부분을 애초부터 설치하지 않는 것이죠. 최근 시장에 소개된 럭셔리 레벨의 호텔들조차 식음료 영업장은 기껏해야 아래 수준 정도로만 갖춥니다. 동대문의 JW메리어트 동대문스퀘어도 그랬고 광화문에 곧 문을 열 포시즌스도 그렇겠죠.
커피숍을 겸한 올데이 다이닝 allday dining
이탤리언이나 프랜치 등 파인다이닝 fine dining 하나
로비 라운지 (커피숖이 겸해도 되는데 굳이....)
그리고 바 (요즘은 루프탑 roof top bar가 대세입니다)가 전부이며,
다른 영업장의 결손을 벌충하고 식음료부문의 P&L을 흑자로 포장하는 연회
울며 겨자 먹기로 설치해야 하는 룸서비스 IRD in-room dining
기존의 대형 호텔들이 full service 호텔로써의 자격 - 아마도 왠갖 종류의 레스토랑을 다 갖춰야 한다는 것으로 오역했음직한 - 을 충족시키기 위해 너나없이 설치했던 불란서식, 중식, 일식, 이태리식, 한식(그나마 대부분 없앴지요?!) 등의 ethnic restaurants과 부페식당, 커피숖, 로비 라운지, 바.... 이들의 구색과 비교하면 새로운 호텔들의 그것은 꽤 단촐해 보이죠?!
럭셔리 명찰을 달기 위한 최소한의 자격이지만 수익성 profitability 을 고려하면 이마저도 많아 보이는군요. 아니나 다를까, 명찰의 값어치와는 별개로, 비교적 가벼운 몸집의 이들 신상 호텔들 조차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간간히 듣기도 합니다.
이비스앰배서더명동 Ibis Ambassador Myeongdong
거추장스러운 명분과 체통에 구애받지 않는 곳들은 파격적인 접근법을 보입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정말 생경했던 개념, 하지만 최근엔 너나없이 지어 올려 시장을 교란하는 원흉처럼 인지된 그 이름..... 말머리에서 소개드렸던 그 형태입니다.
중저가 비즈니스 호텔
표를 먼저 볼까요?! 2000년대 중반 서울 요지에 개관한 대표적인 중저가 비즈니스 호텔 2곳, 이런 타입으론 우리나라에서 선구자 역할을 한 호텔들입니다.
썰 #3 국내 호텔의 수준차, 특급과 일반호텔 그리고 가족호텔/2013년 국내호텔실적
부대시설의 구성비가 눈에 들어 오나요? 이비스앰배서더 명동은 13%, 그나마 강남의 이비스서울은 25% 정도 선이군요. 지난 포스팅에서 소개드린 서울 특 1급의 부대시설 구성비 60%와는 판이하게 다른 양상이죠?! 지금까지 장황하게 설명드렸던 이유들 때문입니다.
이비스앰배서더명동 Ibis Ambassador Myeongdong의 바 La Bar에서 내려다 본 야경
무궁화 4개, 1급 체급이면서도 왠만한 특 2급 호텔보다 매출규모가 큰 이비스앰배서더 명동 Ibis Ambassador Myeongdong도 식음료업장이라 변변히 부를 만한 곳이 달랑 하나 (라따블 La Table과 르바 La Bar 둘이지만, 사실 같은 영업장이라 불러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구획조차 뚜렷해 보이지 않습니다)에 불과합니다. 중저가 비즈니스호텔은 대부분 이런 식이고, 임대형식 (장소를 임차하거나 기능자체를 outsourcing 하는)을 취하는 곳도 최근엔 생기더군요.
이들은 호텔이라는 상품속성을 보는 시각 자체가 기존의 호텔들과는 차이가 있는 듯 합니다. 기업의 존재 이유는 이윤을 추구하는 것.. 기존의 호텔들과 이들 중저가 비즈니스 호텔이 추구하는 궁극적 가치는 동일하지만 사용하는 수단은 판이하게 다르군요.
중저가 비즈니스 호텔 (일반적으로 미드스케일과 이코노미 범주의 호텔을 의미하는 출저 불분명한 용어였습니다만 워낙 흔해졌으니 이젠 고유명사화 되겠군요)들의 지상 최대 명제는 '실속'입니다. 화려한 시설, 세심한 서비스 등 허울 좋은 명분 따위엔 관심조차 없는 듯 합니다. 행여나 이익률을 갉아 먹을 소지가 있는 것들은 가차없이 버렸습니다. 룸서비스는 말할 바도 아니고, 연회 Banquet 기능 조차 생략했으며, 레스토랑도 이비스앰배서더 명동처럼 아주 필수적인 기능 한 두개만 설치합니다.
이비스앰배서더명동 Ibis Ambassador Myeongdong의 라따블 La Table과 르바 Le Bar
안쪽이 라따블인데 우든 파티션 하나로 영업장 둘을 구획했습니다.
변화를 파생하는 키워드, 인건비 그리고 고용 유연성
기성 호텔들의 개념을 부정하는 배경, 차이를 만드는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인건비, 그리고 고용유연성입니다.
고객의 손으로 작동시키는 세탁기와 자판기를 도입하며 staffing을 최대한 줄였고, 내부의 기능을 가능한 한 비정규직화 해 고용유연성을 확보합니다. 호텔리어의 눈에도 몰인정해 보일 정도이지만 옳고 그름을 따질 계제가 아닙니다. 추구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채용하는 수단이 생소해 보일 뿐이죠. 잡음이 더러 생기긴 합니다만 법으로도 '대부분' 보장된 수단이니까요....
허울 좋은 명분을 미련없이 버린 댓가는 꽤 알차 보입니다. 사용하는 회계 체계에 따라 들쑥날쑥하지만. 감가상각비나 이자비용 등을 감안하지 않은 영업이익율 (Uniform System의 GOP)를 따지면 특 1급은 기껏해야 20~30%, 이들 중저가 비즈니스 체급들은 50% 내외를 구가하는 듯 하더군요.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글쎄요?!!!! 무지랭이 늙은 몽돌이 알 리 없지요. 저는 애널리스터도 아니요, 교수도 아닌, 호텔에 고용된 일개 직원의 신분에 불과합니다. 더군다나, 영업장 사정이 더 나빠지면 맨앞에서 총탄을 맞을 수도 있는 처지...
고상한 서비스로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럭셔리 레벨과 안전이 담보된 실속있는 잠자리를 제공하는 이 중저가 비즈니스호텔은 각각 다른 성격의 고객을 타깃팅하며 양립하겠지요?! 하지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체급에 상관없이 이들 식음료업장의 규모는 앞으로도 계속 축소 조정되겠지요... 최근 뉴욕 힐튼이 그랬던 것처럼, 럭셔리호텔의 필수 서비스로 보였던 룸서비스 조차도 이젠 안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변화의 선구자, 이비스앰배서더 명동
위 본문에서 이비스 앰배서더 명동 Ibis Ambassador Myeongdong의 이미지를 사용했는데, 최근에서야 구경할 수 있었어요. 그 곳에 근무하는 아리따운 호텔리어를 만났는데 무지한 몽돌에게 틈틈히 도움을 주시는 분입니다.
포스팅이 많이 길어졌습니다만 말 나온 김에 잠시 구경하고 갈까요?!
이비스앰배서더명동 Ibis Ambassador Myeongdong의 1층 E/V홀
이비스앰배서더 명동 Ibis Ambassador Myeongdong은 이비스앰배서더 강남과 함께 우리나라에 중저가 비즈니스호텔의 지평을 연 선구자로, 이비스앰배서더 강남보다 2년 여 늦은 2006년에 개관했습니다.
오피스빌딩(구 서울은행)을 임대, 리모델링 했는데 1층 부터 9층까지는 상업시설이고, 10층 ~ 19층을 호텔로 사용합니다. 다른 호텔과 달리 호텔의 로비와 프론트데스크, 그리고 레스토랑은 모두 19층에 배치했는데 개관 당시 꽤 센세이셔널 했더랬어요.
이비스앰배서더 명동 19층 로비와 프론트데스크
19층 로비와 프론트데스크인데 생각보다 번듯하군요?! 왼편에는 비즈니스센터의 기능을 하는 칸막이 된 공간이 따로 있습니다. 다소 거추장스러워 보이기도 했는데 추후 레노베이션 때 손을 좀 봐야 될 듯 싶더군요.
넓고 편안하며, 앉아서 쉴 수 있는 곳도 넉넉하군요. 최근에 개관한 이비스 버젯, 이비스 스타일과 비해서도 꽤 넓은 편입니다. 무엇보다도 19층 뷰가 정말 훌륭합니다.
이비스앰배서더 명동 라따블과 르바
레스토랑과 바입니다. 저녁부페가 3만 3천원.... 비싼 가격은 아니지만 음식의 퀄러티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수준이군요.
280개 인벤토리의 객실은 구경해 보지 못했습니다만 이비스 스타일의 것보다는 약간 큰 6.3평.. 10평 내외의 특급 호텔에 비하면 한참 작지요?! 대부분의 중저가 비즈니스호텔들이 이 정도 사이즈인데, 잠자는 본연의 기능에 충실합니다.
이비스 명동의 위세는 2013년까지 엄청났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조차 불황의 여파를 피해 갈 수는 없었나보군요. 아마도 2013년에 정점을 찍고, 아직 공개되지는 않았습니다만 2014년엔 다소 정체된 모습을 보였을 듯 하고요, 올해는 그야말로 죽쑤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곳에 근무하는 호텔리어들에게는 꽤 충격적이었을 듯 합니다. 주변의 다른 호텔들은 더 죽 쑤고 있습니다만 이들에겐 익숙하지는 않더라도 아주 가끔이나마 경험한 적이 있던 불황이거든요. 하지만 한국의 이비스는 생전 처음 겪는 위기이니 그 여파가 더 클 밖에요....
안타깝지만 이제 초입입니다. 옛날에 알던 사이클보다는 훨씬 골이 깊을 듯 하군요. 모쪼록 잘 견디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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