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을 더러 만나고,
호텔리어들과의 만남을 같이 할 때도,
종종 신경 쓰이고 걱정될 때가 있습니다.
'혹 더러운 관행의 때를 묻히는 건 아닐까?'
김성호 대표께서는 기성 호텔이 만든 흔한 관행엔 관심이 없는 듯 보였어요. 호텔을 시장에 노출시키기 위해 애쓰는 듯 하지도 않았고, 호텔이라면 너나없이 채용하는 마케팅 수단도 나몰라라 하는 듯 했습니다.
핸드픽트 호텔 Handpicked Hotel
핸드픽트 호텔은 마치 아직 때 묻지 않은, 텅빈 하얀색 도화지랄까요? 그 속에 어떤 그림을 그릴지 저도 잘 모르겠고, 호텔 역시 뭔가를 구체적으로 정해 놓지 않은 듯 했어요. 스토리를 담아낼 도화지와 액자만 마련해 둔 느낌입니다.
이미지: 핸드픽트호텔
잔뜩 흔해진 이름, 라이프스타일 호텔.... 신상 호텔들은 저마다 정체성을 엄포하며 시장으로 들어섭니다. 그 호기로운 선언이 때로 자격을 갖춰 시장에 먹히는 경우도 없진 않아요. 하지만 대다수 경우, 현란한 디자인을 한꺼풀 벗겨내면 무미건조한 속살이 들춰지고 말죠. 너나 없이 단 그 이름 '라이프스타일'은 이미 상처 받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이 칭하는 라이프스타일 고유의 스토리란 것이 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제대로 본 적도 드물고, 느낀 적은 더더군다나 없으며, '그런 게 있다'고 종종 듣기만 했습니다. 그런 게 만약 있다면 그건 아마도 휘황찬란한 시설이나 훌륭한 서비스 외 또다른 무엇이겠죠?
상도동 핸드픽트호텔
핸드픽트는 라이프스타일 호텔을 자칭한 적도 없고, 또다른 뭔가를 규정하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호텔의 홈페이지를 둘러봐도 스스로를 포장하고자 하는 의도는 찾아 볼 수 없군요. 다소 투박해 보이는 수단으로 호텔의 모습을 담담하게 전하고 있을 뿐이에요.
호텔을 좀 안다는 몇몇 지인은 핸드픽트를 구경한 후 '동네 호텔 (Neighborhood Hotel)'이라 고쳐 불러가며 이러쿵 저러쿵 수다를 늘어 놓더군요. 이런 식으로 호텔 자신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이들이 호텔을 규정하고 나섰으니 어쩌면 좀 생경한 모양새로 비춰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매력적일까요? 오히려 그런 면 때문에 애정이 생겼을 수도 있어요. 자신의 모습을 윤색해 내세우지도 않고, 스스로를 규정하지도 않아 아직 비어 있으며, 그나마 그 속을 채우는 건 호텔 자신이 아니라 호텔을 이용하는 고객이거나 저 처럼 떠벌리기 좋아하는 호사가이거나...
원래 스토리란 게 그런 것 아니었을까요? 호텔의 노력에 의해 인위적으로 포장되는 뭔가가 아니라 호텔을 이용하는 고객들이 몸소 느끼고 appreciation하며 만들어 가는 것, 호텔은 그저 좋은 틀을 갖춰 스토리를 담아낼 그릇이 될 뿐이라고....
핸드픽트호텔 10층 파티홀에서 열렸던 Creative Hotel & Design, TALK
이미지: 호텔아비아 장진수 대표님
그렇지만 핸드픽트 호텔의 꿈은 결코 소탈하지 않아요. 핸드픽트는 빨대를 꽂아 지역상권을 초토화시키며 홀로 성장하는 '재벌 빵집/마트형' 비즈니스 모델을 경계합니다. 지역과 함께 공존하는 일터를 꿈꾸며 자포스시티 Zappos City를 탄생시켰던 토니쉐이 Tony Hsieh의 다운타운 프로젝트 1Downtown Project를 동경한다네요?
핸드픽트의 그 원대한 꿈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겁니다. 호텔이 입지한 상도동은 김성호 대표께서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라더군요. 비즈니스맨들이 바삐 오가는 도심도 아니거니와, 관광객들을 유혹할만한 핫스팟을 지닌 곳도 아닙니다 꼬불꼬불한 골목을 끼고, 허름한 시장과 연립주택이 넓고 낮게 분포한 흔한 그림의 낙후된 '동네'....
홈페이지의 지면을 할애해 동네 맛집과 시장, 병원 등을 소개합니다.
아마도 김성호 대표께서는 핸드픽트가 동네와 함께 성장해 나가는 모습 하나 하나를 도화지에 그려나갈 모양이지요? 동네와 함께 커가는 핸드픽트 호텔의 성장 스토리를 쓰는 겁니다.
호텔 수익의 일부를 동네 결식아동 지원, 노숙자 식사, 저소득층 결혼식이나 돌잔치 등 동네와 주민을 위해 사용할 예정이라고도 했습니다. 아울러, 주변 상권에도 관심이 많더군요. 호텔에서 필요한 것들은 가능하면 동네에서 소싱하려고 노력합니다.
이런 것들 하나 하나가 모여 결국 호텔의 성장 스토리가 되는 것이겠죠?
그렇지만 모든 게 새로운 도전일 수 있습니다. 핸드픽트가 자리해 함께 성장하겠다는 상도동 역시 동전의 양면이에요. 기회이기도 하지만 넘어야 할 난관이기도 하죠. 호텔 산업에서 입지가 점하는 비중은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입니다. '현대 호텔의 아부지'라 불린다는 스태틀러 Ellsworth Statler가 답했다죠? '호텔 사업에서 뭐가 가장 중허냐? 3가지만 대라'는 질문에,
'로케이션, 로케이션, 로케이션'....
하지만 핸드픽트의 로케이션은 멋지게 관행을 비웃습니다. 주변엔 호텔 먹거리도 흔치 않는, 흔한 동네, 상도동이니까요..
세미나 (Creative Hotel & Design, TALK)에서 피력하길, 이미 잘 만들어진 로케이션이 아니라 로케이션 아닌 곳에서 시작해 좋은 로케이션을 창조하며 지역과 함께 성장하고 싶다고..
어쩌면 스스로에게 던지는 다짐일 수 있지만 이를 듣는 순간 매너리즘에 젖은 제 사고가 창피할 정도였어요. 그 용기와 도전이 부디 결실을 맺어 오랜 관행이 깨지는 모습을 제 눈으로도 보고 싶습니다.
기사를 보니 전례가 없진 않더군요. "..... 브룩클린의 위스 호텔 Wythe Hotel은 황량한 공장지대에 들어서면서 일대에 변화의 바람을 몰고 왔고, 도쿄 메구로의 오래된 베드타운에 들어선 클라스카 호텔.... (트래비 기사 일부/아래 링크)" 역시 그런 이유로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궁금해 하시는 분들도 계실 듯 한데, 정체성 (나눔과 공유가치를 통한 사회공헌)이 비슷한 호텔 한 곳이 또 있지요? 늙은 몽돌이 애정하는 또다른 라이프스타일 호텔 카푸치노입니다. 열정적인 포스트를 작성해 올린 적이 있었으니 참고하시고요,
두 호텔을 비교하면 꽤 흥미로운 점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공유가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채용한 수단은 전혀 달라요.
호텔 카푸치노는 나눔의 방법과 수단을 구체적으로 정해두고 대중에게 공개합니다. 하지만 핸드픽트는 좀 느슨해 보이는군요? 몇몇 숫자가 언급되긴 했지만 결국 '지역사회 상도동에 열심히 공헌하며 같이 성장하겠다'라는 큰 약속만 해 둔 정도로 다가옵니다.
이미지: 호텔 카푸치노
시스템을 중시하는 대기업 계열의 호텔과 목적 자체에 중점을 둔 개인 소유 호텔의 차이도 작용했을까요? 그렇지만 추구하는 바가 진실하다면 그 방법과 수단이 중요한 건 아니라고 봐요.
장단점이 흥미롭게 대비됩니다. 핸드픽트는 환원의 방법과 정도를 제한하지 않았으므로 그 내용과 폭이 더 넓을 수 있죠. 이는 지역 사회에 꾸준한 관심을 쏟고 긴밀히 소통해야 옳게 환원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그렇지만 구속력이 강하지 않으니 오너의 의지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오히려 호텔 카푸치노의 것이 손쉬운 환원 방법으로 보이지요? 굿네이버스나 유니세프를 통해 정해진 대로, 약속된 기부를 행하면 됩니다. 아울러 마케팅 효과도 기대할 수 있겠죠. 그렇지만 지역사회와의 연계성은 핸드픽트 만큼 강하지 않는데, 어쩌면 핸드픽트호텔과 호텔카푸치노의 입지 특성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을 수도 있겠군요.
김우진 작가의 '헌팅트로피'/이미지 핸드픽트호텔
다소 불안했을 수도 있지만 핸드픽트의 실천 의지는 이미 호텔 내부 곳곳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위 이미지는 1층 웰컴월에 전시된 핸드픽트의 얼굴, '헌팅트로피' 인데요, 버려져 환경을 파괴하고 있는 플라스틱 의자를 이용해 만든 작품이라고 해요. 인간이 스스로의 미래를 사냥하며 챙긴 재앙의 전리품이랄까요?
지하 볼룸 Ballroom에 전시된 문승지 작가의 Four Brothers
환경에의 관심은 핸드픽트에게 어쩌면 당연한 분야이긴 합니다만 동네 호텔로써의 정체성을 희석하지나 않을까 걱정되는 면도 없지 않습니다.
길어지니 한번 잘라가도록 하겠습니다.
(핸드픽트호텔 요모조모/객실 + 한식 레스토랑 나루 + 볼룸)
핸드픽트호텔 주차장 꽤 큽니다.
- 자포스는 미국 최대의 온라인 쇼핑몰입니다. 창업주 토니셰이는 새로운 사옥을 찾다가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됩니다. 라스베이거스 구도심에 도시와 함께 공존하는 일터를 만들고자 다운타운 프로젝트라는 회사를 창업하죠. 다운타운 프로젝트는 지역과 기업이 함께 혁신하고 성장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실행에 옮긴 첫 사례로 일컫어진다는군요?..... 큰 돈을 버는 회사가 직원에게 복지를 제공하고, 회사가 성장함에 따라 문화와 예술을 얘기하는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모여 만든 커뮤너티에서 그들 스스로가 협업하고 나누며 생기는 변화를 기대한다고 해요.... 토니셰이의 운영 철학은 '기획하지 않는다'입니다. 성장 가능성을 지닌 사람들의 창의성이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조력자 역할을 할 뿐입니다.... 여러 방면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우리 사회는 한 가지 변화에도 다양한 단체와 사람들이 영향을 받고 있는데요. 이러한 커뮤니티를 아우를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그러한 이해 관계자들을 토론 또는 정책 수립의 장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는 것입니다. 정부도 기업도 시민사회도 혼자서는 절대로 해결할 수 없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최고의 방법은 주민 또는 시민을 직접 문제의 해결사로 만드는 것이죠. 토니 셰이는 이를 깨닫고 직접 나서서 자신의 커뮤니티를 만들어가겠다는 사람들을 돕고 있는 것입니다. 발췌: 행복을 배달하는 도시, 자포스시티를 밟다. 자포스의 토니 셰이와 라스베가스의 다운타운 프로젝트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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