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데이트 시절 한번 왔었던 듯 하고, 얼핏 강보에 쌓인 첫째를 데리고 다시 왔던 듯도 싶지만 정확한 기억은 아닙니다.
한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다른 여성을 대동했던 건 분명 아니란 것이죠. 기껏 두번 정도이고, 다행히 옆지기님께서 그 두번 모두를 기억하고 있더군요.
"우리 옛날 여기 왔자나~♬"
어설픈 기억을 과신하면 그야말로 경 칠 수도 있는 겁니다. 아무튼 그 대강의 위치조차 간신히 기억에 남은, 아주 오래 전의 일이에요.
'아마도 이 주변쯤이었던가?'
운전대를 놀리며 간신히 두리번거리던 와중에 마침내 눈에 익은 골목이 길건너 어럼풋이 보이는군요. 금새 옛날의 기억들이 애뜻하게 밀려옵니다.
성북동 국시집, 한성대 입구입니다.
성북동 국시집
성북동 국시집을 처음 안 건 아마 유명 일간지의 맛칼럼을 보고 난 후였을 테지요? 당시 전 노숙자와 진배없는, 총각 자취 생활의 마지막을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칼국수 하나를 찾아 이 먼 곳까지 온걸 보면 그 칼럼의 내용은 꽤 자극적이었나 봅니다. 아니라면 20년 전에도 맛집 탐방을 즐겼다는 것인데, 궁색했던 제 처지를 생각하면 후자일 리가 없어요.
성북동 국시집, 혜화동로타리에서도 가까워요.
그나저나 그 옛날 시시콜콜한 파편들이 기억 한구석에 남아 있는 걸 보면, 십 수년이란 세월은 그다지 긴게 아니었더군요. 많은 게 변해 갔겠지만 늙은 그 기억과 그리고 철들지 않은 제 어린 생각은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성북동 국시집
골목 그리고 밖에 걸린 간판은 쉬이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옛날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데, 한식 대문은 아마 현대식으로 바뀐 듯 싶군요?
성북동 국시집/안동국시 맛집
하지만 내부는 이미 딴판입니다. 아주 낯선 모습인데, 방은 양식 홀로 바뀌어 있고, 매정해 보이는 입식 테이블들이 그곳을 잔뜩 채우고야 말았더군요.
열심히 면을 치던 어르신의 모습이 간신히 들여다 보이던 주방,
그곳도 차가운 현대식 설비가 점령하고 말았습니다.
성북동 국시집/안동국시 전문입니다.
주인장으로 뵈는 40대 중반의 아주머니께 20년 전의 일을 여쭈었더랬죠. 면을 치시던 그 분은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셨다더군요? 하지만 4년 전 쯤에 돌아가셨다고....ㅠ
영 서운해지고 맙니다.
옛날 뵈었던 어르신도 안 계시고, 내부도 몰라볼 정도로 바뀌어 버렸군요.
20년 전 노포에 대한 추억은 사람이 항상 먼저요, 분위기 그리고 그 다음 쯤이나 맛인 것이지. 더군다나 익숙치 않은 분위기로, 사람마저 바뀌었다는데 맛이 그대로일 리 있나....ㅠ
성북동 국시집/안동국시
그러고보니, 20년 전과는 잔뜩 달라졌을 현재의 모습을 단 한번도 상상치 않았던 제 게으른 생각이 원망스러울 지경이군요.
급기야 나오는 음식들조차 성에 차지 않습니다.
소면처럼 얇고 가지런히 예뻣던 그 면발은 괜히 고르지 않고 소란스러워 보이더군요.
성북동 국시집/안동국시
그렇지만 사골로 우려낸 국물의 맛은 옛날의 그것과 달리 느껴지지 않습니다. 느끼함이 입에 남는 여느 사골 육수와는 달리 성북동 국시집의 것은 꽤 칼칼하고 담백한 맛 그대로이군요. 두껍지만 다소 좁고 깊어 멋스러웠던 사발 용기 역시 옛날의 그것입니다.
찬은 몇 추가된 듯 하지만 그 깊은 맛을 내던 김치는 온데간데 없군요?
담아내는 차림새부터 일단 틀렸습니다. 바삐 돌아가는 도심 식당처럼 김치 항아리를 식탁에 내놓고 손님이 필요할 때 일일이 덜어먹는 식인데, 이건 맛이 아니라 식당의 편의를 위한 것이니까요.. 더더군다나 김치의 역할이 더욱 중요한 음식입니다.
성북동 국시집/서울미래유산
그나저나, 수요미식회를 위시해 잔뜩 흔해진 맛집 프로그램에 수도 없이 오르내렸을텐데 이 표식 하나만 남겼군요? 미래도 중요하지만 현재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성북동 국시집 국시 가격 9천원
요즘 왠만해선 저 가격 아래로 내려오기 힘들죠?
성북동 국시집
20년 전에도 유명 일간지의 맛 칼럼을 장식할 정도이면 당시에도 꽤 유명했던 곳이에요. 기사를 다시 보니 1969년 개업을 했고, 이후 대통령을 비롯해 뭇 유명 인사들의 사랑을 받기도 했다더군요.
요즘이라고 그 유명세가 꺽였을 리 없지만 제 눈엔 영 서운했습니다. 대를 이은 노포의 퀄러티가 옛 그대로 유지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테죠. 사람의 빈자리는 훨씬 더 허전했던 모양인데 부디 현재에도 충실해 미래의 유산으로 남을 수 있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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