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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호텔리어의 맛집

와이프의 창조 요리와 15년 만의 명동교자


와이프님께선 요즘 여러가지 요리를 '창조적'으로 시전하고 계십니다.


저와 아이들은 이를테면 일종의 몰모트 처지랄까요?


맛이 없어도 군소리를 자제하고, 감사한 마음을 한껏 표하며 먹는 저와는 달리 아이들은 그런 눈치 볼 신분이 아니죠.

특히, 혈기왕성한 초딩 막내놈은 엄마의 음식에 대해 날선 반응을 여과없이 쏟아내곤 합니다.



옥수동 어느 가게의 충무김밥



몇 일 전엔 충무김밥이란 걸 처음으로 밥상에 올리셨더군요?

맛평은 김밥이 아니라 곁들여 나온 무우김치와 오징어무침에 쏠렸어요. 무우김치와 오징어를 같은 양념으로, 함께 버무려 냈더군요. 전 눈치도 없이,


'섞지 않고, 다른 양념으로 각각 따로 무쳐 내는 거야'


라고 감히 말했지 뭡니까?


아뿔싸...

정수리에 쏟아지는 싸늘한 시선, 이내 차갑게 돌변한 밥상 분위기를 뒤늦게 눈치챘지만 이미 뱉어낸 말을 다시 줏어 담을 순 없는 일이죠.....ㅠ





평소엔 엄마와 대립각을 곧잘 세우던 딸아이조차 마나님 편을 들고 나서더군요. "따로 나온다"는 제 말은 개무시 당하고 말았습니다.


하긴, 집에선 하염없이 게으르고, 약속 깨기 다반사인 아빠의 권위는 애저녁부터 땅바닥을 딩굴고 있었죠. 하지만 이건 좀 억울합니다. 전 먼 옛날 거제산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 원조충무할매김밥을 다녀온 적도 있는 사람이걸랑요...



즉흥적인 명동나들이를 하게 된 배경입니다.

그렇다고 명동 충무김밥집을 가고 싶었던 건 아니에요. 갈 곳은 따로 정해져 있습니다.



명동교자 분점



지금은 하염없이 까칠한 막내 녀석의 하룻강아지 시절,

강보에 쌓인 그 놈을 의자에 불안하게 눕힌 채 조바심 내며 먹던 그 칼국수...


이후 10 수년 만에 다시 가 보는


명동교자





그나저나 명동 나들이는 참 오랜만이군요.

명동은 관광 산업에 종사하는 일인으로써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는 곳이죠? 한국 관광의 상징이기도 하고, 우리 관광이 안고 있는 숙제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곳이기도 합니다. 


관광객 빙의 되어 한번 와 보고 싶었던 곳이기도 한데, 가까이 있으면서도 유유자적 깊은 곳까지 와 본 건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로군요.



명동 골목 먹거리 노점

 


여튼 공부에 여념 없는 큰아이도 불러냅니다.

골목을 가득 메우고 있는 엄청난 인파에 아이들은 흥분한 기색이 역력하더군요. 제겐 곧 스트레스나 다름없지만 대부분 외국인들이라 기분이 나쁘진 않았어요. 이들은 곧 호텔을 먹여 살리는 밥줄이기도 합니다.





인파를 헤치고 명동교자로...



명동교자 본점



역시나 본점은 이미 긴줄로 점령 당했더군요. 재빨리 윗쪽의 분점으로 선회합니다.


겉은 다소 평온해 보였지만..... 

어이쿠,,, 입구 뿐만 아니라 2, 3층을 오르내리는 계단도 온통 사람들로....ㅠㅠ 

차라리 본점이 나았습니다만 마나님은 결정을 번복하는 스탈이 아닙니다.





 한 30분 기다렸나요?

간신히 자리를 잡고 재빨리 주문합니다.



명동교자 메뉴/칼국수 가격 8천냥, 만두 만냥 



알다시피 명동교자는 선불입니다.

구멍 가게도 아닌 것이, 기업형 대규모 레스토랑이 채택한 지불 방법 치곤 꽤 투박한가요? 하지만 오가는 그 엄청난 트래픽을 고려하면 크게 이상할 것도 아니에요.


정말 엄청난 손님들이 오갑니다. 외국인들도 많고요...



예쁜 꼬맹이 아가씨가 색동저고리를 입고 왔네요. 



긴 줄을 서고, 분주하고 소란스러운 실내, 그리고 투박한 서비스,,, 

하지만 이런 걸 불평하는 이들은 많지 않은 듯 해요. '의례 그런 곳'으로 생각하는 듯도 하고, 유명한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선 그 정도 불편은 기꺼이 감수하는 듯도 하고.. 


명동교자는 서비스를 상품가치로 내세우는 곳이 아니니까요.

맛 그리고 이미 탄탄히 구축한 이미지와 유명세로 영업하는 곳입니다.



명동교자 마늘김치, 꽤 유명합니다. 일본인관광객들도 아주 좋아한다더군요.



하지만 서비스를 찬찬히 지켜 보면 아주 체계적입니다.

주문과 계산, 서빙 등의 과정이 한마디로 일사불란하고요 그리고 스피디해요. 고객의 추가 요구에 대한 반응도 나쁘지 않고 지체되지 않습니다. 


직원들의 표정은 상기되어 있지만 전혀 어둡지 않고요, 그리고 넉넉하게 배치합니다.



명동교자 만두



급작스러운 유명세를 타면 부실한 민낯을 금방 드러내는 곳도 적잖죠? 하지만 명동교자는 탄탄한 기본을 갖춘 곳입니다. 



명동교자 칼국수, 옛날 그대로의 맛



만두며 칼국수, 그리고 마늘김치까지,,, 옛날 그대로의 맛이군요.


일반 식당의 것과는 달리 면말은 더욱 부드럽습니다. 소고기 다진 것과 양파, 호박 등의 야채를 볶아 칼국수에 얹어 내는데, 아마도 그 특유의 칼국수 불맛은 이 고명 때문인 듯 하지요? 

얇은 만두피로 만든 완당식 칼국수 만두 역시 아주 맛있습니다.


홈페이지를 찾아 봤더니 식재료 역시 엄선해 사용하는 듯 하더군요. 채용 정보 란에 적힌 직원 처우 역시 눈에 띄네요.

(명동교자 홈페이지 Link)



무한리필 명동교자의 공기밥과 면사리



사리나 공기밥을 주문하면 추가요금 없이 무한대로 줍니다.


엄청난 고객을 맞아 오면서도 그 오랜 기간 동안 음식 퀄러티가 전혀 훼손되지 않고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는 건 아주 놀라운 겁니다. 가맹 사업은 고사하고, 명동 분점 한 곳 외 분점도 따로 내지 않았는데, 이 역시 퀄러티를 희생시키지 않으려는 의도 아닐까요?


제가 처음 간 건 20년 전, 그때나 지금이나 맛이 바뀌지 않았고, 메뉴도 거의 그대로이며, 식당을 운영하는 방법 역시 옛것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군요.


명동교자 (옛날 이름은 명동칼국수)는 1966년에 생겼으니 어느듯 50년입니다.

수도 없이 생겼다 사라지고 마는 새것이 아니라 전통을 고집스럽게 고수하는 그런 '오래된 집'으로 굳건히 살아 남길 희망합니다.





마지막으로 팁 하나!

명동교자에선 테이블 회전이 엄청 빨라요. 그 분위기에 휩쓸리면 자칫 허겁지겁 먹고 나오게 되죠. 맛과 그 일사불란한 서비스를 음미하려면 가급적 여유 있게, 천천히 즐겨야 해요.

여유 부린다고 눈치 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마나님의 창조 요리 그리고 아빠의 땅바닥에 떨어진 권위 덕택에 15년 만에 맛있는 음식을 다시 맛봤군요.

아이들 역시 아주 만족해 했던 명동나들이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명동교자 휴무일: 설날과 추석 당일

명동교자 영업시간: 오전 10시 30분 ~ 저녁 9시 30분

명동교죠 주차: 없음/인근 유료 주차장

을지로 입구역 외환은행 본점 옆 주차장 추천 (백화점 주차장 비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