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친구를 다시 봤습니다.
15년 전 이민 간다며 고국을 등졌고, 5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거든요.
제 대학 생활의 전부나 마찬가지였던 동아리 친구들...
예닐곱 되던 동기놈들 대부분은 뿔뿔히 흩어져 연락이 끊겼어요. 두엇은 외국 파견 근무 중이고, 다른 놈들은 아마 지방에 근무하는 듯 한데....
동아리에 거의 유일하게 있던 여자 동창에게 연락해 같이 만났습니다. 종종 연락을 하긴 했지만 만나는 건 결혼식 후 처음이군요? 하지만 엊그제 만났던 듯 낯설지 않고 반갑습니다.
같이 학교도 좀 둘러 보고요...
전 강의 때문에 3년 전까지 학교를 오갔습니다만 이민 갔던 친구에게는 꽤 오랜만일 듯 하더군요.
여유롭던 교정은 다소 답답해졌습니다. 드넓었던 대운동장도 건물들로 채워졌더군요. 학교 앞은 그야말로 색바랜 과거와 현란한 현대가 공존하고 있네요.
오후 늦은 시간, 좀 출출했는데 그 옛날 종종 찾던 장칼국수 집이 궁금해 여자 동창에게 물었죠. 아직 있다네요? 맙소사.....ㅎ
졸업이 벌써 이십 수 년 전의 일, 학교 앞의 가게들은 손바뀜으로 분주했을 터인데, 시장통 그 허름한 식당이 세월의 무게를 견디고 아직도 살아 남아 있다고?
원조사철냉면
주변의 가게들은 모조리 치장을 다시 한 듯 보이는데, 그 사이 익숙했던 간판과 지저분해 보이던 좁은 통로가 고스란히 남아 있군요. 마치 나의 그 고단했지만 애틋했던 과거가 고스란히 저 바닥을 뒹굴고 있는 듯 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미끄덩거리던 면과 빠알간 국물의 장칼국수가 요즘도 종종 생각나기도 했더랬어요. 자주 먹지는 않았고, 용돈이 생기면 마치 특식인 냥 두어 달에 한번씩 먹던 음식이었죠. 그 맛이 그리워 1년 전 회사 주변에 생긴 장칼국수집을 찾기도 했습니다.
관련글: 추억의 장칼국수
구조도 전혀 바뀌지 않았고, 의자나 테이블도 그대로인 듯 한데....
하지만 메뉴의 구색은 단촐해졌네요? 옛날엔 온갖 종류의 '밥'과 '찌개'가 벽을 가득 메웠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주변의 번듯한 레스토랑들에 밀려 대부분 지워낸 듯 합니다.
그런데, 어? 그 그리웠던 칼국수는 없네요?
여쭈었더니 지금은 겨울철에만 한다고...ㅠㅜ 그러고보니 이곳의 주력은 냉면이었더군요.
작은 스덴 찬기에 담겨 나온 무우김치가 찬의 전부...
옛날과 하나도 바뀌지 않았군요. 냉면 김치를 고추장으로 버무려 내는 듯 한데, 맛은 꽤 좋습니다.
어쩔 수 없이 물냉면으로 주문하고요,,,
옛날 이곳에서 냉면은 거의 먹은 적이 없었으니 익숙치 않은 모양새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1만 훌쩍 넘는 가격의 평양냉면 육수와는 전혀 다른 모양새이지요? 꽤 자극적일 듯 보이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맛이군요. 하지만 곤궁하게 살던 그때, 마치 특식처럼 귀하게 먹던 그 옛날의 맛과 어찌 비교할 수 있겠어요...
학생들이 서너 테이블을 차지하고 냉면과 만두를 먹고 있는데 아주 앳되어 보입니다. 그 옛날 우리들의 모습도 그랬겠지요? 어쩌다 세월이 이렇게 흘렀는지 모르겠어요...
사철냉면 바로 뒤, 소주 한 병에 몇 백 원 짜리 순대를 나눠 먹던 시장통의 그곳 역시 고깃집으로 변하고 말았더군요. 우리가 옛날의 우리가 아니요 사철냉면의 그 맛이 기억한 그것이 아니듯, 추억 속의 수많은 것들도 어쩔 수 없이 변해갔겠죠.
왠지 우울해졌는데, 친구와의 옛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곳이 그나마 하나 둘 남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젊은 분이 크지도 않은 식당을 분주히 오가시는데, 여쭈었더니 주인장 되시는 분의 따님이라시더군요. 졸업 후 처음이라며 칼국수를 먹으러 왔다 말씀드렸죠. 주방에 계신 다른 분과 말씀을 나누시며 아주 반가워하셨는데, 어머니께서 주방에 계시다네요?
나올 때 인사를 드렸습니다. 어르신께서도 30년 전 그 푸르렀던 시절을 안타깝게 추억하셨는지 모를 일이지만 정정하신 모습을 뵈니 기분이 좋아졌어요.
그나저나, 요놈을 다시 보려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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