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유난히 큰 일들이 많았군요.
몸 담고 있는 재무팀의 구성원들도 제법 바뀌었고
중요한 내용의 계약 건에다, 호텔의 명운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는 프로젝트며, 통상임금에 관련된 노사간의 첨예한 협상, 그리고 예기치 않았던 여러 사건들.....
그 결과가 애초 원했던 모양새이거나 그렇지 못하거나,
모습을 하나씩 하나씩 갖추며 마무리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 과정이 험할 수록 술자리는 잦아지는데,
각각의 자리는 저마다 다른 의미를 띄기도 하더군요.
업무로 쌓인 스트레스를 잠시 털어내는 자리가 대부분이지만,
더러는 그런 자리로 위안을 받고,
일부는 옅어진 관계의 끈을 다시 엮기도 하며,
취기를 틈타 무심고 삐져 나온 선후배의 속내를 확인하며 안도하기도 합니다.
나약한 몽돌은,
한때 이런 자리가 싫었더랬습니다. 속마음을 온통 다 들키는 듯 했거든요.
지나치게 솔직해지고,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남발해 다음날 아침에 후회하고...
바로 위에 모시던 전임 임원분께는 아예 절주를 선언하고 2년 가까이 자리를 같이 하지 않았었는데, 윗분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요.
오늘은 격조했던 중늙은 여성호텔리어들 몇과 함께 했습니다.
자리가 그러하니 늙은 호텔리어들이 내내 다니던 그 파전집은 다소 초라해 보이더군요.
십수년 째 잊을 만하면 들러는 중국집에 예약을 넣습니다.
향미鄕味, 명동 신세계백화점 건너 중앙우체국 옆
외양은 어수룩해도 근처의 직장인들 사이엔 꽤 알려진 곳,
주위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차림들이지만 맛은 역시 알찹니다. 주인장께선 당연히 화교 분인데 넉넉한 몸집과는 달리 눈썰미가 좋아서 가끔 들러도 아는 체 하시더군요.
술을 먼저 내는데, 이곳에 오면 의례히 시키는 연태고량주입니다.
모두 여섯이니 오늘 서너병은 너끈히 따겠군요..
몽돌이 그나마 좋아하는 주종입니다. 술고래이신 제 부친과는 달리 한잔 술에도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오르는 체질인데, 그나마 이런 고량주와 보드카는 뒤탈이 적더군요. 위스키나 와인 등 고상하고 값비싼 주종은 몸이 잘 받지 못하니 천상 촌티나는 입맛입니다.
오향장육, 이 향미의 주특기인데, 이곳에 오면 항상 주문합니다.
장에 절인 돼지고기도 좋지만, 파채에 얹는 그 쌉싸름한 마늘 소스가 아주 훌륭합니다. 어떤 재료를 섞어 사용했는지 모르지만 많이 먹어도 입에서 마늘내가 나지 않더군요.
석회점토와 진흙에 넣어 삭힌 오리알 송화단은 자주 먹어도 잘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몽돌의 늙은 미각으론 무슨 맛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부추잡채
이것도 아주 괜찮은데, (중국)부추가 마치 공장에서 키운 콩나물인 듯 튼실합니다. 주인장께선 인원을 보시고 좀 많이 내셨군요. 듬성듬성 보이는 건 아마도 돼지고기이겠지요?! 짭쪼름하니 씹히는 식감도 좋습니다.
깐풍기인데 간도 좋고 파삭파삭 맛있게 튀겼는데, 흡사 집에서 시켜먹는 간장치킨 맛도 느껴지더군요.ㅎ
숙주굴소스 볶음과 짬뽕국물
늙은 호텔리어들만 갔을 땐 국물도 없더니 여성호텔리어들이 왔다고 서비스 안주도 푸짐하군요.
이곳은 물만두도 훌륭한데, 속도 알차지만 시중의 것보다 다소 큽니다.
즐거운 대화가 오가더니 느닷없이 드라마 미생이 화제에 올랐더랬습니다....
외국체계를 따른 호텔이어서 그럴까요? 아님, 제가 몸담고 있는 부서만의 특성일까요?
미생이 다루는 소재들에 대해 대부분 공감합니다만 직원들간의 관계는 다소 생경하더군요.
자리를 함께 한 최고위급 늙은 호텔리어께선 전무 직함을 달고 계십니다만,
미생의 최전무 이경영은 많이 다르군요. 직원을 사이에 끼워 의중을 때때로 감추지도 않고요, 권위적이지도 않아 소통도 훌륭하십니다. 오랜동안 모신 제 눈으로만 봐서 그럴까요?!
아울러, 후배 직원들이 부장 나부랭이 저를 대하는 시각도 많이 다릅니다.
좋게 말하면 자유롭고, 격의없고,,, 달리 말하면 우습게 본다랄까요?! 제가 좀 가볍긴 합니다만...
아울러, 강소라 같은 신입 부하직원들에게 커피, 담배 심부름 시킨다는 건 큰일 날 소리이고요, 성희롱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요.
그래서 중늙은 호텔리어들에게 한마디 했지요. 편한 줄 알라고..
당연히 콧방귀를 날리더군요....
명동맛집 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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