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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어버이날/아버지의 인생

 아버지께서는 40년 가까이 교직에 헌신하셨습니다.

올해 연세가 일흔 여섯 되셨으니, 정년퇴임하신지 벌써 십수년 되었군요. 

 

최근 들어 아버지 건강이 썩 좋지 않으십니다.

아무래도 한번 다녀 와야 되겠다 싶었는데, 겸사겸사 어버이날로 택일합니다. 

 

 

화요일 근무를 끝내고 출발, 시골에서 하루 자고, 올라 오는 길에 처가집도 들러 장인 장모님도 좀 뵙고 오는, 약간 빠듯한 일정입니다.

회사엔 수요일 휴가를 냈습니다.

 

제 고향은 경남 남해, 처가집은 전북 정읍이니 왕복 1천 킬로의 여정인데,

1박 2일로 다녀오기엔 제 저질 체력이 약간 걱정스럽긴 하지만, 이번이 아니면 한동안 못다녀 올 것만 같았습니다. 

 

 

사실 제 체력만 걱정이 된게 아니었습니다.

제 14년 된 고물차,

이 놈의 연식은 사람으로 따지면 저 보다 더 오래되지 않았나 싶기도 한데,

최근엔 부품을 구하지 못해 내려가지 않은 창문도 고치지 못하고, 이곳 저곳 잔병치레도 많았으니, 장거리 주행을 잘 견뎌 낼지 의문스럽기도 했습니다. 

 

 

 남자은 원래 세명의 여자 말을 듣지 않으면 낭패를 본다지요?

골프장 캐디, 네비게이션 아가씨 그리고 마눌님......ㅋ

평소 알던 길을 포기하고 오늘은 이 아가씨의 말만 듣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제가 알던 길과는 완전히 다른 진로를 택합니다.


도로들이 새로 좀 났네요. 명절땐 버스만 주로 이용했었으므로 길눈이 썩 밝지 않습니다. 

 

 

 5시간 가까이 걸려 도착한 남해대교의 야경


손으로 대충 찍었는데도 역시 알아서 다 해주는군요. 기특한 놈입니다.

다리를 건너고, 20분 더 걸려 마침내 집에 도착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늦은 시간임에도 주무시지 않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버지께서는 퇴임 후 한동안 심리적인 방황을 하셨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학교가 인생의 전부였던 분이셨는데, 퇴임이후 갑자기 하실 일이 없어졌으니 어쩌면 당연한 상실감이겠지요?!

지금 분들은 조금 더 현명하게 처신들 하시는 것 같은데, 아버지께서는 퇴임후의 생활에 대해 전혀 준비를 못하셨던 듯 합니다.

 

더군다나, 퇴임이 좀 느닷 없기도 했어요.

그 즈음이 김대중 정부 초입, 이해찬 현의원이 교육부 장관으로 재임하던 시절이었는데, 여러가지 파격적인 교육정책들이 시행됩니다.

그 중 교육 공무원의 정년단축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아버지께서는 바로 그 대상 연령에 계셨고,

대안을 모색하시다 여의치 않자 결국 정년 퇴임을 하시게 됩니다. 

 


마루에 있던 이름모를 꽃....


사진을 찍고 있는 와중에도 마음속으로 울컥합니다.

십년 전까지만 해도 국화니, 군자란이니 제가 보지도 못했던 여러 화초도 즐겨 기르시더니

이젠 그마저도 힘에 부치셨던 걸까요?

시장을 구경하시다 이름도 모를 꽃을 다 사 오시다니.....

 

사족을 좀 붙이면,

80년대 중후반, 경상도와 전라도의 지역감정이 극에 달한 그 당시에도 아버지께선 굉장히 진보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계셨으며, 제게도 치우친 생각을 경계하라시며 값진 충고를 자주 하셨던 분입니다.


물론 위 내용으로 확장시키긴 좀 무리있어 보이긴 하지만,

그 퇴임이후, 김대중 정부를 빨갱이라고 칭하신 적이 아주 가끔씩 있었는데, 전 굉장히 놀랐어요.

지금도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저와 가끔 실갱이를 벌이곤 하십니다.ㅎ 

 

  

여하튼, 평소 가지고 계셨던 가치관도 바뀔 정도로 그 이른 정년퇴임이 충격적이셨던 듯 합니다.

이후, 향토사 관련한 집필을 하기도 하고 책도 여러 권 내셨지만, 주로 친구분들과 어울리시면서 그 억울한 심정을 술로 달래시는 듯 했습니다.


최근엔 불안하셨는지 조금 자제하시는 듯 한데, 불과 얼마전까지도 취기가 끝까지 오를 정도로 많이, 그리고 자주 드셨으니 그런 생활도 십수년에 이르네요. 

 


아버지가 평생을 일하시며 이뤄내신 유일한 물적 유산

연금의 일부로 남은 여생을 보내시려 십여년 전에 다시 지으셨는데,

저의 모든 어릴적 추억이 서려 있던 그 불편했던 옛날집이 항상 그립습니다.

  

제 부족한 생각엔, 애초에 뭔가 좀 의미있는 일을 찾으시거나, 봉사활동을 하시거나 하셨으면 좋았을텐데...

그런 면에서 참교육 선생님의 활동이 제 눈엔 첨부터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참 존경스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합니다. 

 

연세도 많이 되셨고, 체력도 달리시니 그 오랜동안 고착된 생활의 댓가가 조금씩 나타납니다.

병원에 가서 검사도 좀 받고, 약도 좀 지어 드셨으면 하는 바램인데, 그동안 자식들이 여러번 말씀을 드려도, 도무지 고집을 꺽지 않으십니다.

아마도 병원 가시는게 굉장히 두려우신듯 해요.

 

이번에도 좀 강하게 말씀을 드리긴 했지만, 예상대로 반응은 썩 신통치 않으시더군요.

속으로 생각한 바가 있어서 저도 그 쯤에서 물러 납니다.

2차 공격?이 예정되어 있거든요.ㅎ

바로 아래 여동생이 다음 주에 다시 내려 오기로 되어 있는데, 그때는 반드시 결정을 할 생각입니다. 

 

 

 다음날, 점심후 올라올 준비를 하는데, 부모님께선 또 뭔가를 잔뜩 싸 주십니다.

저는 아주 기쁜 마음으로 받고, 즐겁게 먹고, 행복한 마음을 부모님께 전해 드리기만 하면 됩니다.

저도 애들 낳아 키우곤 있지만, 자식의 행복을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시는 부모님의 은혜는 참으로 대단하지요?!!!


부모님을 뒤로 하고, 처가집으로 서둘러 출발합니다. 

 

 

 저녁에 봤던 풍경과는 사뭇 다릅니다. 

 

 

 두시간여 걸려 도착한 정읍,

항상 편안하게 저를 맞아 주시는 두 분~

 

정읍 부모님들도 그동안 참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교직에 잠시 몸 담기도 하셨지만, 거의 평생을 농사 지으시며 오남매를 키워 내셨거든요.

이제는 많이 편해 지셨는데, 아직도 농사는 제법 지으십니다. 덕분에 저희가 때마다 호강입지요.

여든을 넘기셨는데 아직 건강하시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부러 도착시간을 좀 맞추었습니다. 맛있는 저녁을 사 드리고 가려고요. 

 

 

 덕분에 저도 오랫만에 소고기를 먹어 봅니다.

장인어른께서는 육회도 한접시 맛나게 다 드셨는데,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마당에 있던 꽃들,

장모님께선 함박꽃으로 부르셨는데 아마도 다른 이름이 있겠지요? 

 

 

양귀비, 누가 씨 하나를 줘서 심으셨다는데, 괜찮을라나? 

 


블친 초록손이님께서 공들여 심고 계시는 꽃잔디인듯..

흰색도 있네요?!. 전 첨 봅니다. 

 

쌀이랑 김치랑 한껏 챙겨 주시는데, 기쁜 마음으로 또 받습니다.

 

 

자, 다시 서울로 출발~

그러나 곧 우려했던 일이 드디어 생깁니다.

차문이 안에서 열리지 않습니다. 창문은 옛날 부터 내려가지 않았고요~

내년쯤 차를 바꿀 요량으로 사소한 고장은 방치를 했었거든요.

하필이면 이럴 때..... 

 

 

 창피한 쑈를 여러번 했습니다.

천안-논산간 고속도로에는 중간에 톨게이트가 여럿 있더군요~ㅠㅜ

문이 열지지 않으니, 톨케이트 도착할 때마다 조수석으로 간신히 몸을 옮겨 내려서 요금을 지불하고...

톨 직원분들이랑 뒷차 운전하시는 분들이 놀란 눈으로 보시더라구요?!ㅋ

굉장히 미안했어요~ㅎ 

 

 

 이로써 나름 긴 여정을 마무리 합니다.

여러가지 힘들긴 했지만 마음은 한결 가볍고 기분도 좋습니다. 

 

그나저나 저 저질체력 14년 연식의 늙은 애마를 어쩌나~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