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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호텔리어의 맛집

추억의 장칼국수/남대문 맛집 장칼국수 뽈찜


이런 칼국수는 참 오랜만이군요. 



대학 때 학교 앞 시장통의 작은 식당이었는데, 고추장을 풀었는지 여느 칼국수와는 달리 국물의 색이 발갛게 예뻤었지요. 


감사하게도 시골의 부모님으로부터 향토 장학금을 받았었지만 보름을 채 버티지 못했었습니다. 


넉넉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부족한 정도도 아니었던 듯 싶은데 홀로 이리저리 전전하며 살았던 대학 때 씀씀이가 그렇게 검소하진 않았었나 봅니다. 



용돈이 바닥난 이후엔 의례 자취하는 친구놈들에게 빌붙곤 했었지요. 수시로 찾아가 밥도 강탈하듯 얻어 먹고, 잠도 끼어서 자고.... 정 안되면 학교 후문 앞 전당포에 자잘한 물건들을 맡기기도 했었는데 당시 제 재산목록 1호였던 워크맨이 주로 볼모로 잡혔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향토 장학금이 올라올 땐 의기양양, 친구들을 이끌고 시장통의 식당들을 달려 가곤 했었어요. 마치 한 달에 한 두번씩 먹는 '특식'이었다랄까요?!





그 당시엔 그것이 장칼국수인지도 몰랐습니다. 주인장으로부터도 이름을 들었던 기억이 없는데 그저 매운 칼국수 정도로만 알고 있었겠지요. 하지만 그 맛은 지금 기억에도 남아 있을 만큼 아주 특별난 것이었나 봅니다..



'그래,,,, 그것이 장칼국수였나봐'


최근 티비에 소개되었던 백주부 백종원의 장칼국수를 보니 불현듯 옛날 학교 앞 시장통의 그 칼국수가 뇌리를 스치더군요.





학교를 졸업한 이후, 어디에서도 이런 류의 칼국수를 먹어 본 기억은 없으니 무려 30년 만인가요?! 마침내 맛을 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티비에 나왔던 그 번듯한 곳들 일리는 없고요. 늦은 저녁 퇴근길에 종종 눈에 밟히던 남대문 부근 대로변의 꼬맹이 식당입니다. 눈에 들어온 게 서너달 전이니 아마도 백주부의 3대 천황에서 장칼국수를 소개하기 직전에 문을 열었던 듯 해요. 


이런 대로변의 식당은 왠지 내키지 않지요. 더군다나 저녁은 집에서 먹거나, 더 늦을 요량이면 아예 회사 직원 식당에서 해결하니 왠만해선 이런 식당에 들릴 일이 없습니다. 


하지만 퇴근길에 그 빨간 간판의 '장칼국수'가 눈에 띌 때마다 항상 신경 쓰이곤 했었어요. 옛날 그 시장통의 칼국수가 머리에 떠올랐거든요. 



남대문 장칼국수 뽈찜/주차 이런 거 없습니다...



어느 퇴근길, 앞을 서성이다 마음을 다잡고 가게 안으로 들어 갑니다. 아주 말끔한 외양이지만 불안하게도 1층 테이블엔 아무도 없군요. 테이블도 몇 되지 않고... 하지만 용기를 냅니다. 


'칼국수 하나 성에 차지 않는다고 무슨 대수람?!'.....

 

그나저나 칼국수 하날 놓고 이렇게 고민하는 저도 참 어련하지요?!ㅎ 까탈스럽고 소심한 성격이 온통 드러났군요. 하지만 학창 시절의 소중한 추억 하나가 더럽혀질까 내심 신경 쓰이기도 했겠지요.





안으로 들어서니 밖에서 보이지 않던 계단이 있는데, 어? 2층은 제법 소란스럽네요? 손님이 꽤 있습니다. 비로소 마음이 놓이는군요.ㅋ


장칼국수를 하나 주문하고요..





작은 가게이지만 주인장은 서비스에 대해 뭘 좀 아시는 분인 듯 합니다.ㅎ 

손님을 위한 배려가 돋보이는데, 1회용 앞치마를 준비해 주고요 (추후 다시 갔을 땐 없앴더군요), 혹여 모를까 서랍을 열어 수저와 물휴지 등을 보이게 끔 해 두고 갑니다.





손님도 제법 있네요?! 저 처럼 식사를 하시는 분들도 있고, 술 한잔 걸치며 상사 뒷담화를 늘어 놓는 직장인들도 있고...





아마도 점심, 저녁으로 판매하는 칼국수 만으로는 임대료나 직원 월급을 충당하긴 쉽지 않겠지요. 

뽈찜 등 안주류의 메뉴들도 갖추었는데 긴 저녁 시간을 위해 추가된 구색일테지요. 옆 테이블의 손님들이 드시는 듯 보였습니다. 





백김치와 열무김치 달랑 두가지 찬이 나왔는데 정갈합니다. 

전 이런 차림이 항상 좋더군요. 부족한 정성으로 가짓수만 잡다한 부실한 찬들은 차라리 없는 만 못합니다. 





양이 많진 않군요?! 


국물은 역시 빨간색... 걸죽합니다. 맵지만 깔끔한데, 아주 자극적이진 않군요. 백종원의 삼대천황 장칼국수 처럼 다양한 재료가 들어 가지 않은 평범한 스타일입니다. 


육수를 어떻게 내는지 종업원에게 여쭈었지만 잘 모르시더군요. 멸치나 디포리 육수는 분명 아니고, 사골 베이스에 다소 짜게 느껴질 정도의 간간한 생선 맛도 섞였는데 아마도 북어일까요? 면은 숙성을 시켜 직접 뽑는다지만 면으로 차이를 감별해 낼 깜냥이 못되니 패스....





학창 시절 그 '특식'과는 다른 다소 복잡하고 두터운 맛인데 아마도 이것이 원형에 더 가까운 맛이겠지요. 


나름 괜찮은 맛이지만 30년 전의 그 맛을 흉내낼 순 없는 일입니다. 시장통의 그것이 장칼국수였는지 조차도 모르겠지만 30년 전 곤궁한 시절, 그 미꺼덩거리던 매운 칼국수는 아마도 추억을 먹으며 맛을 더 익혀 왔었겠지요.



오며 가며 출출할 때 들러 간단히 허기를 채울 수 있는 음식이지만 가장 저렴한 장칼국수가 7,000원이니 아주 만만한 가격은 아닙니다. 


하지만 학창 시절 그 빛바랜 추억이 다시 떠오르면 다시 들립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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