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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하루 여행

아픈 역사 창경궁, 아이의 숙제로부터 아빠가 배우다

 

최근의 설문에서 '공교육, 위기다'라고 답한 비율이 90%에 가까웠다지요?!

 

 

그야말로 대한민국 공교육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로 들립니다. 뉴라이트 역사교과서도 검정을 통과했다니, 아이들이 우리 역사를 올바르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 당하지나 않을까 내심 불안해기도 해요. 저도 많이 알지 못하는 무지랭이지만, 이젠 부모 스스로 공부하며 집에서라도 제대로 된 역사를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판인가요?

 

밥 벌어 먹기도 빠듯한 험난한 세상에 이 무슨 투잡이람......

 

 

오늘은, 저번 창덕궁 여행때 시간이 부족해 가지 못했던 창경궁을 볼 참, 초등 3학년 사회교과서의 '우리고장 자랑'을 참고한 한나절 여행입니다. 아이도 두세 시간 소요되는 고궁여행을 나름 좋아라 하는데, 그 이유에 대해선 물어 보지 않았어요. 저야 뭐 그냥 싫어하지 않고 기껍게 따라 나서니 고마울 따름이지요.

 


 http://cgg.cha.go.kr

 

 

제 나름의 꿍꿍이가 있긴 했습니다. 아이가 일제시대의 잔재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우리 역사의 아픔을 몸소 느꼈으면 하는...... 하지만 이야기 하진 않습니다. 스스로 느꼈으면 했으니까요.

 

다녀온 후 생각이지만, 역시나 큰 기대 않길 다행이었네요~.

 

 




낮엔 더울 것 같아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1030분에 예정된 첫번째 무료안내서비스를 이용합니다. 



무료안내서비스, 해설사 선생님의 설명이 굉장히 자세하고 재미 있습니다. 아이도 나름 열심히 듣네요.

 

 

아래는 창경궁에 대한 간략한 소개. 관심 없으시면 그냥 넘어 갑니다.


 

 

야만의 식민시대, 왕이 거처하던 궁궐을 코끼리 똥냄새나는 동물원으로 바꾸다니 일제의 만행은 다시 생각해도 속으로 뭔가가 치밀어 오릅니다.  

 


창경궁은 조선 성종이 세 명의 대비를 위해 세운 궁궐로써 조선 법궁인 경복궁의 동쪽에 위치하니 창덕궁과 함께 동궐이라 불리웠습니다. 창경궁은 입지여건과 지형 등을 고려, 특이하게도 동향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애초에 왕대비의 생활공관으로 지어졌던 건물들이라 빈전과 침전이 주를 이루는데, 크기도 아담하며 지붕의 선이나 정원 등이 경복궁 및 창덕궁과는 달리 아주 아기자기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왕조의 상징이었던 궁궐은 일제의 훼손에 의해 존엄성을 잃게 되는데, 창경궁 안의 건물들은 대부분 헐렸고 동물원과 식물원이 설치되었으며 이름마저 창경원으로 격하되었습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익히 알고들 계시지요?

  

 

아래 '동궐도'에서 왼쪽 부분이 창덕궁, 오른쪽이 창경궁입니다. 건물들이 매우 촘촘히 들어서 있습니다?! 


 

http://cafe.daum.net/yoksa/J6mr/119

 

  

하지만 창경궁 건물들의 90%가 일제시대에 뜯겨 나가고, 그 자리에 동물원, 식물원 그리고 영화관 등이 들어 섭니다. 지금까지 18% 정도만 복원된 상태라고 하는군요...

 

넓은 궐 부지의 건물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되지 못한 채 덩그러니 떨어져 따로 노는 듯 보이는 이유가 이 때문인 듯 합니다. 아래 왼쪽 사진의 함인정과 환경전 부근에서 이를 여실히 느낄 수 있어요. 굉장히 넓고 개방적이어서 보기엔 시원스럽지만, 원래는 궁녀 등이 살던 곳과의 경계와 행각 등으로 사방이 막혀 있던 곳, 주변이 다 뜯겨 나갔다고 합니다.  

 

오른쪽 사진은 주 전각들의 북쪽편, 지금은 잔디밭으로 조성되어 있지만  그 옛날엔 행각들이 빼곡히 있던 곳입니다.

 

~하지요?!

 

 

 

  

아래는 함인정 옆의 무명탑과 춘당지 길목의 괴석입니다. 누가, 어디에서 옮겨 놓았는지도 모른다는 일제의 잔재. 제 눈엔 흉물스럽게만 보이는데 왜 그대로 두는지 잘 모르겠네요. 


 

 

 

아래는 춘당지입니다.

 

왼편의 사진이 뒷쪽에 위치한 작은 연못(소춘당지)로 옛날부터 있던 것이고, 오른편의 사진은 대춘당지로 원래는 임금이 몸소 농삿일을 하던 논이었다고 합니다. 일제가 창경궁을 파괴할 당시, 그 논들을 다 없애고 연못을 판 후 배타고 노는 유원지로 만들었어요.

 

 

 

 

대온실입니다. 1909년에 유리로 지어진 최초의 서양식 온실로, 만들 당시 동양최대였다고 하는데 그 상징성 때문에 존치시킨 듯 합니다. 2004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고 해요.  




 

찍어온 사진이 많지만 너무 길어지니 이만 할까요? 

 

아이가 좀 제대로 보고 들어서, 우리의 아픈 역사를 몸으로 느꼈으면 하는 욕심이 있었지만 초등 3학년에겐 아직 무리인가요? 나름대로 일기를 길게 쓰기는 했더군요. 사실, 이번 여행을 통해 오히려 제가 많이 배웠습니다. 

 

 

 

 

 

지난번 창덕궁 여행에서도 바로 곁에서 봤지만, 창덕궁과 창경궁을 헷갈려 하시는 분들 의외로 많으시지요?

아이들은 부모의 거울이라 하더군요. 상처 투성이인 공교육, 그나마 지탱하는데 부모님들의 역할이 그 어느때 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현재입니다. 

 

조금씩 아이랑 같이 공부해 보아요~^^